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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대학 시절 즈음에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처음으로 했다. 남들이 부러워 했고 너 무슨 뒷배경이 있냐고까지 했던 모 지방지 서울 주재 사무실에서 두 달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확한 아르바이트 수령 금액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시간당 책정을 했고 점심식대, 교통비 지급 정도로 기억이 난다.
그곳 직원은 단 둘. 광고부와 서울 주재 기자 한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나는 주재기자의 보조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신분증을 발급 받고 프레스센터, 국회 등을 가서 보도자료와 사진(그 당시에는 인화된 사진을 각 신문사마다 배포)을 매 시간에 맞춰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신문사 밥줄인 광고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은 광고주를 만나고 광고 도안을 만들어 본사가 있는 지방으로 보내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삐 보내고 있었다. 광고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은 거의 보질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지금의 와서야 느낀 것이지만) 지방지 주재기자는 아침 조간지와 필자가 전달해 준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원고지에 옮겨 적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고용주와 피고용주 사이에서 그때 나는 주재기자의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80년 후반을 생각하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조간지와 보도자료를 참조해 기사를 쓸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았다. 정치, 사회, 노동계 등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기사거리들이 즐비했을 법도 한데 그 주재 기자는 '받아 쓰기'만을 전공한 기자 같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취재를 하지 않고 받아 쓴 기사가 신문에 실리는구나 하는 의구심 정도만 들었을 뿐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으니 아침 제 시간에 사무실로 나가서 청소하고 이런저런 잡일을 했다. 시간이 되면 보도자료를 가지러 이곳저곳을 다녀와서 주재기자 책상에 올려다 놓으면 내 임무는 그만이었다. 주재기자는 조간지와 보도자료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연필로 적당한 기사거리에 표시를 했다.
표시가 끝난 몇 건의 기사를 원고지에 옮기고 난 후 몇번의 퇴고를 거쳤다. 그리고 그 원고를 팩스로 전송하면 주재기자의 하루 일과는 끝이 났다. 두 달여 동안 지켜본 나는 주재기자의 행동에 이의제기나 어떠한 대꾸도 할 입장이 못됐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늘상 봉착하는 부분이 있다. 주로 사진기사를 많이 쓰는 나는 현장에서 몸싸움도 하고 거친 언사로 대할 때가 있다. 그리고 취재원으로부터 신분 요청을 받을 때는 시민기자 명함이 있지만 주저할 때가 초창기에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나도 직업기자들처럼 당당히 기자증을 발급받고 활동했으면 하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년 전 그 직업기자의 행동은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근무 태만이라고만 단정지을 수 없는 떨떠름한 첫 아르바이트의 추억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가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하는 기자님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2008.07.25 17:4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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