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휴가는 가까운 곳에서 보내자

등록 2008.08.07 10:02수정 2008.08.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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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어딘가 가야만 하는 것 같다. 여행은 더울 때 보다 오히려 시원한 봄, 가을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여름이면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욕구가 치솟는 것은 아마도 여름방학이라 시간이 많고, 남편의 휴가가 겹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몇 해 전, 언니 네와 2박3일 일정으로 태안으로 떠났다. 낮에 바닷가에서 실컷 놀고 텐트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으로 텐트를 쳤다. 딸아이는,

"우와, 텐트다. 히히" 거리며 좋아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며 드넓은 바닷가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평화요 행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여운을 즐기는 것도 잠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비켜가기를 바랬는데, 그날의 예보는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장대같은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늦게 도착해 아래에 텐트를 친 까닭에 어쩔 도리가 없이 비를 쫄딱 맞으며 텐트를 걷어야 했다.

 

이미 주변의 숙박시설은 만원이었고, 하나 비어있는 것은 단체용인지 모르겠으나 20만원, 하룻밤을 지불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해서, 그냥 차에서 그 밤을 보내기로 했다. 밤새 비는 오락가락 그칠 것 같다가 또 내리고! 카니발 차 한 대에 7명이 짐들과 함께 새우잠을 자야 했다.

 

 불편한 잠자리에 중간 중간 잠을 깼다. 비몽사몽간에도 배는 출출해서, 아니 답답함을 탈출하고 싶어서 그 밤에 문을 열어둔 옆에 있는 식당으로 발걸음은 향했다. 거기서 먹던 컵라면, 국수 등은 참 맛있었다. 비록,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먹었지만 말이다.

 

아침이 오고 날이 밝았지만, 날씨는 호전되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려서 일정은 무시되고 일찌감치 대구로 향해야 했다.

 

고생스러운 그 밤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된다. 화면을 통해 텐트를 치고 놀았던 그 깨끗한 태안 바닷가가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 마음도 기름처럼 까맣게 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 남편은 여름휴가 중이다. 기름 값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거기에 맞춰 수입이 오르면 좋으련만 수입은 제자리라 자연 지갑은 얇아졌다. 그래도 휴가는 즐겨야 하고, 오늘은 처음으로 남편과 나, 딸 세 식구가 함께 조조영화를 봤다. 미이라3 영화의 내용을 무시하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 함께 처음으로 본 영화라.

 

이른 시간이었지만 자리가 거의 찰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소 조조를 보러 가면 조용했는데, 방학에 휴가철임을 실감했다. '뭔 사람들이 몽땅 영화관으로 휴가를 온 것 같다.' 대구의 더위야 다들 알 것이다. 지금도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 날씨에 영화관은 너무 시원했다. 아니, 조금은 써늘했다. 온도를 조금은 높였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원하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이 무더운 날씨에 도로변은 '공사중' 이었다. 남편은 딸에게,

"이 더위에 고생하는 분들이 참 많제. 가만히 있으면서 덥다 하면 안되겠제?"

"아저씨가 땀을 많이 흘리네. 힘드시겠다."

"그래, 이 더위에 포항제철에서 용강로에 일하시는 분들도 있는기라. 그런 분들도 있는데, 이깟 더위에 덥다고 자꾸 그러면 안되것제"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주변에 해외여행을 갔네, 하며 거창하게 여름휴가를 보낸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내 자신을... 거한 휴가는 보내지 못할 지라도 가족과 함께 이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짐을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우리 부부는 체력이 약해서 멀리 여행을 가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해서, 이렇게 당일치기로 알뜰히 보내는 휴가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휴가 첫 날은 대구에서 가까운 청도에 갔다. 특별한 경험을 위한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저 더위를 물리칠 물놀이가 목적이라면 그리 멀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서 시원함을 만끽하면 되지 싶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더위가 저만치 물러가는 것만 같다. 아이 또한 물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허기가 지면 준비한 음식을 먹고, 공기 좋고 시원한 곳에서 자는 낮잠은 또한 꿀맛이라,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것 같았다.

 

휴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많이 웃고 많이 쉬어서 재충전의 시간으로 지내야 함을 의미한다면, 비록 멀리 떠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다. 집에서, 서점에서, 가까운 계곡에서, 영화관에서 보낼지라도 사랑하는 이와 웃으며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휴가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응모

2008.08.07 10:0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응모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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