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돌아가신 날이야, 왜 추모도 못하게 해?"

대한문 앞 분향소 원천봉쇄...경찰, 너무하네

등록 2009.05.23 22:35수정 2009.05.2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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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프다. 23일 새벽까지 기사를 정리하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창을 열었을 때. 꿈이길 바랐다.

이해할 수 없었다. 추악하고 더러운 짓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은 가만히 잘 살고 있는데 왜 스스로 목숨을 거두셨을까.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삶을 살겠다던 인간 노무현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가난한 시골 아이가 상고를 나와 대통령이 되기까지를. 정치계 인맥과 학연, 지연 앞에 견디며 싸워온 길고 긴 세월들.

집권 당시에도 그는 소박하면서도 솔직한 언행을 보이며 서민들과도 격이 없음을 보여줬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악플과 욕설도 그대로 내버려 뒀다. 직접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고향으로 귀향해서도 그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으로 특권이라면 특권인 경호원과 사저를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시민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려 했다.

그러나 재임 시절 그는 보수세력과 사회 특권층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권이 보여준 행동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괴롭게 만들기 충분했다.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겠다던 청와대는 그의 컴퓨터를 문제 삼고 한나라당은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비난했다. 검찰의 수사는 더욱 가혹했다. 유서에도 표현되었을 정도로 인간 노무현의 몸과 마음은 상처를 입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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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으로 가는 시청역 출입구가 원천 봉쇄되자 나가지 못한 시민들이 술렁인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날에도 설마 이럴 줄 누가 알았을까.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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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가 예정된 대한문 근처를 포위한 경찰병력. 인도로 걸어오던 시민들이 길이 막히자 웅성이고 있다. ⓒ 김현준


서민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사람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대한문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은 추모가 시위라며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대한문으로 가는 시청역 입구를 완전히 차단했다. 경찰 버스가 추모를 위해 마련된 분향소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자 흥분한 시민들은 "열어! 열어!" 구호를 외쳤다. "살인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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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입구를 원천 봉쇄한 전의경 부대. ⓒ 김현준


이명박 정권 들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재개발 되는 용산 지역의 시민들이 불에 타 목숨을 잃더니 이제는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까지도 세상을 떠났다. 보통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다. 하물며 온 국민이 다 지켜본 일들을 다시 재생시킨다면, 현 정권과 검찰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대한문 앞에서 추모할 거라고 TV에서 자막으로 보고 왔어요. 그런데 이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인가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청와대의 행동들, 사건들 하나하나 다 따지고 싶어요!"


가족 모두 상복을 입고 나온 시민들은 물론, 직장인, 학생, 젊은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국화꽃을 들고 대한문으로 향했다. 아니, 대한문 앞에서 경찰에 항의했다. 경찰은 추모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의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현장의 어느 경찰 간부는 이것이 시위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도 했다.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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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으로 가기 위해 항의하던 시민들이 결국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 김현준


"니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어?!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이야! 왜 추모를 못하게 하는 거야!"


"지금이 공산정권이야?! 이명박 공산정권이냐고!"

일부 시민들은 경찰이 봉쇄하지 않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통해 대한문으로 향했다. 수백 명이 겨우 이런 식으로 현장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헌화를 시작했다. 철망에 꽂힌 국화꽃과 전경 버스를 뒤로 한 채.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향소가 차려지고도 4시간이 넘도록 인도와 역 안에서 울분을 토해야 했다. 경찰병력 앞에서 신문에 인쇄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오려내 추모를 지내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오열을 토하며 실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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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병력으로 길이 막히자 항의하던 시민들 일부가 가로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붙이고 헌화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오열을 토하며 실신하기도 했다. ⓒ 김현준


경찰은 시민들의 질타와 항의에도 해산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 경찰 직원은 시민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오늘은, 민주주의의 상징이 목숨을 거둔 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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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추모행렬 차단에 분노한 어느 학생이 필기도구에 적은 외침. ⓒ 김현준

#노무현 서거 #대한문 봉쇄 #추모행렬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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