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평안히 가십시오

등록 2009.05.23 22:27수정 2009.05.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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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없이 조용했을 부산대학교 병원 앞 거리에서 한 무리의 경찰병력을 발견했다. 현 정권의 마수가 이런 시골에도 뻗친 것일까? 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 거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벗어나는 길에 약국에서 검은 현수막을 설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검은 현수막에는 "노무현 대통령님 평안히 가십시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다. 다만, 오늘 본격적인 데모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병원에 수많은 방송국 차량과 인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무슨 다른 일이 발생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주변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아저씨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정말 모르겠느냐는 눈빛으로.

 

"정말 무슨 일인지 몰라서 묻는 거요?"

"예. 무슨 일이죠?"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소."

"예?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일로 죽었죠?"

 

아저씨는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자살이지 뭐. 당연한 거 아니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급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실망스럽게도 시큰둥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편이다. 나는 정신이 무척 혼란스러웠는데, 이것은 나의 작은형이 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약 17년 전(정확히 언젠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초등학교 때였다. 아버지를 따라 신년회에 갔을 때, 거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얀 장갑을 끼고 사람들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아버지에게 물어봤을 때, 아버지는 상길 아저씨의 고등학교 친구인데,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예상대로 낙선했다.

 

그 다음으로 본 때는 대학에 들어가서 몇 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백마를 타고 온 구세주처럼 민주주의의 빛나는 깃발을 들고 진보 진영에 나타났다. 수구세력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습게 여겼겠지만, 그는 용맹하게 수구세력을 무찌르고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했다. 민주주의 사회를 열망하던 많은 국민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파렴치한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한 패배에 넋을 잃었다.

 

수구세력들은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국민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결국 영웅은 패배하고 말았다. 수구세력의 공격이 강력했던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진영이 너무나 어리석었고, 탐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수구세력의 창이 아니라 민주당 그들이었다. 그들이 국민의 적이었다.

 

결국 영웅은 죽었다. 나는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파들에 섞여 소리 없이 울었다. 사방에서 침묵의 울음이 흘러넘쳤다. 땅에도 하늘에도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울음이 넘치는 세상이었다. 울음은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영웅은 죽었다고.

2009.05.23 22:27 ⓒ 2009 OhmyNews
#노무현전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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