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방궁? 조중동 정말 웃기네요"

[현장] 노 전 대통령 사저 앞 토론... 봉하는 지금 거대한 정치토론장

등록 2009.05.28 13:08수정 2009.05.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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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양산을 쓰고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봉하마을은 지금 슬픔의 장이자 거대한 정치 토론장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삼삼오오 곳곳에 모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치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28일 오전 9시 30분경 노 전 대통령 사저 앞 도로에 10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새벽 떨어진 부엉이 바위가 바로 보이는 곳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서울과 부산, 전주에서 왔단다. 부부끼리 오거나 친구끼리 왔단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란다. 50대 남성이 그들 가운데 끼어들자 양산을 쓰고 있던 부인이 가자고 보채기도 한다.

먼저 이들의 토론 대상에 오른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다. 일부 언론은 사저를 '아방궁'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직접 눈으로 목격한 시민들은 그동안 속은 것이 억울하다는 듯 분통을 터트리며 한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대체 저게 무슨 아방궁이냐고!"

서울에서 왔다고 한 50대 남성은 "팔당호 주변에 한번 가보면 비교가 되겠네요"라며 "거기는 호화스러운 별장이 얼마나 많은데요, 조·중·동 신문은 그런 데는 안 가 본 모양이지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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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 유성호


언론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남성이 말을 받았다. "지금 방송들도 노 전 대통령이 훌륭했고 위대했다고 난리던데, 이전에는 안 그러더니 지금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여성은 기자를 향해 "언론이 기록을 잘 해야지. 어찌 보면 언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정원에 있는 나무들도 도마에 올랐다. 한 여성은 "나무 좀 봐, 소나무도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은 안 들잖아요, 모두 싼 나무들만 심은 것 같네요, 그런데 무슨 아방궁이고, 호화판인가요? 언론들이 정말 웃기네요"라고 말했다.

60대 남성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거론했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잖아요, 박정희 정권 때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잖아요. 여론을 돌리기 위해 그랬던 거 다 알잖아요, 마찬가지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지금은 국민들이 다 알아요, 언론도 못 믿으니까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구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재벌도 입에 오르내렸다. 김아무개(56)씨는 "재벌들이 고문변호사를 많이 고용하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비리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변호사들을 사는 거 아닙니까, 재벌도 손을 대야 하는데 말입니다"고 말했다.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봉하마을은 잘 사는 마을이라는 인식을 갖고 왔는데, 실제 와서 보니 딴 판이라며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전주에서 왔다고 한 여성 박아무개(55)씨는 "오늘 처음 봉하마을에 와 봤는데, 그동안 언론 보도로 마을에는 호화스런 집들만 있는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와서 보니 낡은 집도 많고 폐가도 많다, 요즘 지었다고 하는 몇몇 집은 새롭지만 뒤편에 있는 집은 여느 농촌 마을과 같다"고 말했다.

토론이 벌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 들어 순식간에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가만히 듣기만 하거나 한마디씩 거들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서로 헐뜯기를 해서 그렇잖아요."
"진보니 보수니 나누지 말고 통합하는 정책을 펴야 하잖아요."
"정치인들은 국민을 이간질 시켜야 표가 나온다고 여기는 모양이에요."

한 여성은 "입 다물고만 있던 정치인들이 문제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검찰 수사가 잘못 돼 간다 싶으면 정치인들이 나서서 지적을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검찰이 두려운지 입을 다물어 버리잖아요"라고 말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들고 있던 남성은 "방관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때 야당 시절을, 지금 민주당은 지난 정권 때 여당 시절을 떠올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말입니다"고 덧붙였다.

하얀색 바탕에 옅은 꽃무늬가 놓인 양산을 쓴 여성은 "그동안 정치권이며 검찰, 언론에서 했던 것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화병이 들게 생겼잖아요"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이 부엉이 바위 앞에 한번씩 서 봤으면 하네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40대 남성이 결론을 내리듯이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선거 아닝교, 다음 선거에는 정신 바짝 차려야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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