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죽음은 '최후의 항전'이었다

극한상황, '죽음의 카드'를 승부수로 던지다

등록 2009.06.08 16:02수정 2009.06.0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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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보름이 넘었건만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그의 죽음은 1949년 김구 주석의 죽음과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다. 김구는 평양에 가서 남북회담을 한 이듬해에 암살되었다. 노무현 역시 2007년 평양에 가서 남북회담을 하고 왔다.

 

김구의 죽음에는 이승만 정권의 공권력이 직접 결부되어 있었다. 김구의 암살을 이승만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이승만이 그것을 묵인 내지는 방조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공유했다. 노무현의 죽음에도 검찰등의 공권력이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에 노무현의 죽음이 초래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김구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한국인들은 노선의 구별 없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혈서들이 연일 경교장으로 답지했다. 그의 죽음을 따라 할복과 음독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상객 중에는 거지도 있었고 여승도 있었다. 고구마 장수 할머니도 그의 영정 앞에 나와 오열했다. 신분고하를 막론한 추모객들이 경향 각지에서 몰려들어 1분 당 100명꼴로 분향 배례했다.

 

노무현의 장례 역시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한국인은 노선의 구별이 없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그의 죽음을 따라 죽은 여대생도 있었다. 필부필부일수록 그의 죽음을 더 애통해 했지만 신분고하를 막론한 추모객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그의 분향소에는 1분 당 500명 이상의 문상객이 분향 배례했다.

 

아무리 애도하고 추모해도 여전히 허기를 느낀다

 

이토록 놀라운 추모열기였지만 기실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일면 지엽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두 사람의 생전 캐릭터에서 찾아야 한다. 김구나 노무현이나 둘 다 서민출신이자 이 사회의 비주류였다. 두 사람 다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였다. 두 사람 다 이른바 '바보'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더 본질적인 것은 두 사람 다 이 사회의 기득권자와 분단고착주의자들에게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김구의 추모 열기가 이승만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면이 있다면, 노무현의 추모 열기는 이명박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는 면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김구의 죽음에 대해 그랬듯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와 추모만으로는 부족한 무엇인가를 느낀다. 김구에 대해서 그랬듯이 노무현에 대해서도, 아무리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무리 생전의 그를 예찬해도 여전히 허기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는 노무현의 죽음이 갖는 성격이 무엇인지를 냉정히 분석해서 인식해야  하리라고 본다.

 

불후의 명문, 비장하고 간명한 유서의 표면과 이면

     

1)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2)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3)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번호는 필자가 매김)

 

이와 같이 노무현의 유서를 1),2),3) 세 부분으로 나눠 보았다.

 

먼저 1)은 인간 노무현이 자기의 괴로운 심경을 솔직히 밝힌 부분이다. 여기에는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한 실존인의 무서운 고독감과 절망감이 피력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글은 대중의 동정과 분노를 유발하기에 위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노 전 대통령이 전혀 몰랐다고는 보지 않는다.

 

마지막에 있는 3)은 죽음 이후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그는 화장할 것과 마을에 작은 비석 하나만을 남길 것을 요구했다. 서민을 자처했던 그는 진정 서민다운 장례를 원했던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는 다른 전직 대통령처럼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자기의 죽음이 돌발적이고 즉흥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내용은 중간 부분 2)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문구 때문에 그가 이 사회의 '화합과 용서'를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는 짐짓 그런 것이라고 주장해 보기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 혹은 의도와는 달리, 2)는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몰래 돈을 받고 말하지 않은) 부인에게 '미안해하지 마라'고 한 다음에, 부부로서 말도 없이 죽는 미안함에 자기를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인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죽음이 운명이기 때문에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그는 자기의 죽음이 자기에게 부하된 숙명임을 확신하는 발언을 남긴 것이다.

 

그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갑제는 노무현의 죽음을 놓고 '서거'라고는 해서 안 되고 '자살'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길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들의 주장이 무례한 것은 상이 끝나기도 전에 망자를 흠집 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거'라는 말에는 애도와 경하의 어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런 무례한 의도가 없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이었다"고 말해도 된다. 그는 틀림없이 자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살은 조갑제나 김동길 따위가 말하는 자살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갖는다.

 

사회학자이며 <자살론>의 저자인 뒤르 캠은 자살에는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anomie, 무규범) 그리고 애타적(愛他的) 자살이 있다고 구분한다. 물론 조갑제나 김동길은 노무현의 자살을 이기적 자살이나 아노미적 자살로 간주한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살에는 애타적 자살이라고 판별할 수 있는 수많은 방증이 있다.

 

애타적 자살은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지나치게 강했던 사회적 의무감'은 무엇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5년 내내 특권과의 싸움이었고 유착과의 싸움이었고 기득권과의 싸움이었다. 특권과 유착은 싸울 만한데 기득권과의 싸움에서는 가짓수가 원체 많아서 안 걸리는 데가 없다."(2008년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노무현이 말한 대로 이 사회의 기득권은 가짓수가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정당이 기득권자이고 검찰이 기득권자이며 족벌언론이 기득권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임기 5년 동안 기득권과 싸움을 벌였다. 국민은 그를 비기득권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고 그 역시 이것을 자기의 실존 이유로 삼았다.

 

그런데, 그런데,,, 예상에 없던 박연차 돈 문제로 그는 기득권으로부터 무자비한 폭격을 당하게 되었다. 정치인으로서 필요 이상으로 도덕의식이 강했던 그는 방어할 수단을 찾지 못했다. 그는 신음했다. "여러분은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노무현의 선택은 이때쯤 결정 나 버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예의 기득권의 공격은 집요했다.

 

천하의 승부사 노무현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쓰기로 했다. 아니 쓸 카드라고는 그것 한 장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투신이라는 가장 충격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비장하고 간명한 유서를 작성했다.(필자는 이 유서가 불후의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명민한 그는 자기의 죽음이 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를 헤아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새벽에 대문을 나온 그는 화단의 잡초를 뽑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명민한 이성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경호원 또는 카메라에) 보여준 것이다. 경호원을 따돌린 그는 지체 없이 벼랑에서 몸을 던진다.

 

그는 비기득권의 몰락을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비기득권이 기득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이 땅의 비기득권을 위한 '죽음의 항전'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은 연재 중입니다.

2009.06.08 16:0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은 연재 중입니다.
#노무현 #기득권 #뒤르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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