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퇴임 후 유럽에 가고자 했을까?

[노무현 강독회-7]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등록 2009.10.23 10:20수정 2009.10.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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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1년 후인 올해 초 유럽을 방문하고자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때문에 유럽 방문을 미뤘고, 결국 유럽 방문은 이루지 못한 꿈이 됐다."

 

김성환 한국미래발전연구원(미래연) 기획실장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왜 유럽에 가고자 했을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출신으로 퇴임 후에도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 실장은 한 권의 책이 노 전 대통령을 유럽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 책은 바로 미국의 진보적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쓴 <유러피언 드림>이다. 김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이 책을 3번이나 읽으며 정말 잘 쓴 책이라고 강조했고, 진보의 미래에 대해 저술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책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유러피언 드림>에서 찾은 진보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곱 번째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김 실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100여 명도 동참했다.

 

아메리칸 드림이 퇴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메리칸 드림이 퇴색하고 있다."

 

<유러피언 드림> 1장의 주제다. 김 실장은 "미국이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계층 간 신분상승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빈부격차가 작아야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0년 미국의 지니계수(계층간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0.368로 핀란드(0.247)와 스웨덴(0.221)에 비하면 매우 높았다. 또한 미국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예산의 비율은 11%로 유럽(2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이 그만큼 소득재분배에 인색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삶의 질에서도 큰 격차를 보인다. 김 실장은 "근무시간이 미국보다 짧은 유럽에서는 노동하는 것만큼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이고, 아메리칸 드림은 왜 퇴색하고 있는 것일까? 리프킨의 답은 미국은 구시대의 가치를 좇는 반면, 유럽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실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개인주의와 사유재산권 등이 아메리칸 드림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유재산권 등의 개념은 더 이상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소유자 사회' 위에서, 미국 국민 개개인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집을 샀지만,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고 양극화가 심화됐다."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럽은 세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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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사유재산권의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했다. "평화 정책·보편적인 인권·삶의 질·문화적 다양성·지속 가능성 등 유럽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가오는 글로벌 시대에 유럽이 세계의 꿈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리프킨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사유재산 개념에 근거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20세기적 계급투쟁 방식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 살아가기 힘들다"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지를 주장했고, 9·11 테러 이후에는 이라크를 침공했다"며 "하지만 유럽은 '군대는 공격수단이 아니고 최소한의 무력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실장은 "이제는 글로벌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로, 그것은 개방·공유·참여·호혜·신뢰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며 "이미 유럽은 이러한 가치를 통해서 앙숙인 독일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철강공동체를 만든 후 현재는 유럽연합 헌법을 비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신석기시대에서 근대 사이 인류는 자연을 정복하려 했지만 현대 인류는 자연과 재결합하는 단계에 와 있다"며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생산하는 미국보다는 동물에도 인권이 있으니 동물실험을 최소화하자는 유럽의 가치가 '살아 있는 지구공동체'를 만드는 데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유러피언 드림은 단순히 듣기에만 좋은 가치는 아니다. 이미 경제력에서 유럽은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2003년 유럽연합(EU)의 국민총생산은 10조5천억 달러로 미국(10조4천억 달러)을 넘어섰다.

 

"공감의 정치를 통해 코리안 드림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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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김성환 미래연 기획실장이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노 전 대통령은 리프킨이 제시한 새로운 가치에 동의했다"고 김 실장은 말했다. <유러피언 드림>을 읽은 많은 이들도 노 전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할 터다. 한국이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이 쇠퇴하고 있고 우리 또한 미국처럼 쇠퇴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 이견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 실장은 "국민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예산이 미국(11%)보다 낮은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를 다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산을 늘리지 않고 땅만 판다"며 "또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20세기 사회적 권리인 정치적 단결권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유러피언 드림에서 진보의 미래를 찾아 한국 사회에 맞는 코리안 드림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고민과 그 해답은 오는 11월과 내년 초에 유작 형식으로 공개될 예정이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미 그 해답을 귀띔했다. 김 실장의 말이다.

 

"적대적 계급 투쟁이 아닌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시민들이 각성을 해야 한다. 의사는 노동의 가치보다 10배를 더 받고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공감의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를 훈련받고 싶다면, 지금 당장 언론소비자 운동의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자본 통제에 당당히 맞서라."

#유러피언 드림 #김창환 #노무현 강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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