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시험 자동차
이민선
난관은 면허 시험장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안고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재수 없이 왜 개를 시험장에 데리고 왔느냐는 눈빛이었다.
"시험 떨어지면 이 개 탓이야" 하고 말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은 코스와 주행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이름을 부르면 달려 나가서 자동차에 올라타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 친절해 보이는 중년 여성에게 일단 강아지를 맡겼다. 근데 이 녀석이 내 품을 떠나자마자 발광을 하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를 버리려는 줄 알았나 보다.
달랠 시간이 없었다. 친절한 중년 여성은 신경 쓰지 말고 시험이나 잘 보라며 등을 떠미는 시늉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차에 오르자마자 긴장감 때문에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는 온통 강아지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대기실에서 뛰쳐나오는 것은 아닌지! 혹시 친절한 중년 여성을 꽉 깨무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시험에 떨어진 누군가 강아지에게 해코지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던 중 '삑' 소리가 났다. 악명 높은 T자 코스에서 그만 금을 밟아 버렸다. 탈락이다. 예전에는 금을 한 번만 밟아도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신이 온통 강아지에게 쏠려 있는데 시험을 잘 칠 수가 있겠는가!
얼른 차에서 내려 대기실에 가보니 난장판이었다. 강아지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강아지를 맡아 줬던 중년 여성은 강아지를 붙잡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치며 내 품으로 뛰어 들었다.
주변 사람들 눈이 부담스러워 친절한 중년 여성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리나케 시험장을 빠져 나왔다. 뒤통수가 따끔 따끔 거렸다. 등 뒤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개를 시험장에 데려오니 당연히 떨어지지." "오늘 보신탕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강아지 돌려 줄 때는 서운함과 후련함이 그날은 운전면허시험 외에 또 다른 많은 시험을 치른 날이다. 신은 내게 '인내력'과 '자비심'을 시험했다. 그날 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신이 낸 시험에는 합격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 때문에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난 단 한 순간도 강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또 홧김에 쥐어박지도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밥맛이 없어서 점심도 굶고 시험을 쳤지만 강아지는 굶기지 않았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 가르침 덕분이다.
대전역에서 강아지를 주인에게 돌려 줄 때 기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운함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 녀석도 내 얼굴을 핥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룻새 벌써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밤 열 시가 넘어서 서울 봉천동 누나 집에 도착했다. 하루가 십 년 같은 기분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강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면허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세월이 십 년 정도 흐른 어느 날, 누나 집에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십 년 전에 단식투쟁까지 하며 내쫓았던 강아지와 같은 종류, 바로 '말티즈'였다.
눈이 동그래져서
"누나 개 싫어하잖아, 기억 안 나? 단식투쟁까지 했던 거? 면허 시험 보러 가는 내게 강아지 떠맡겼잖아?" 하고 물으니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그랬나! 듣고 보니 그랬던 적이 있는 것도 같고… 키우다 보니 예쁘더라 말도 잘 듣고"라고 대답했다.
누나 말을 듣고 몸속에서 배신감이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마음속으로
'신이시여 나를 또 다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외치며 배신감을 다스렸다.
덧붙이는 글 |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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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시험은 '낙방', 신이 낸 시험은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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