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으면 더한 X이 온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6강] 한홍구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100년'

등록 2009.12.10 09:51수정 2009.12.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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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사, 그 징검다리와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Q: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후퇴한 까닭은?

A: ① 이명박 대통령이 독해서 ② 민주주의 기반이 약해서 ③ 민주화 세력이 잘못해서 ④ 국민들이 민주화에 관심이 없어서

당신의 답변은 무엇인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 같은 질문과 보기를 내놓고 "저도 모른다, 다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한 교수가 다시 질문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줍니까? 민주주의가 안 돼서, 기분 나쁜 것 빼고 솔직히 생활에 지장이 있습니까?

9일 저녁 7시 30분, <오마이뉴스>와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공동 주최로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강연에 나선 한홍구 교수의 주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100년'. 주어진 시간이 90분이니, 9분 동안 10년을 살아야 하는 빡빡한 강연이었고, 결국 강연과 질의응답은 밤 10시가 다 돼서야 마무리됐다.

조선시대 민주주의 맹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미군정, 4·19와 5·16, 5·18광주를 숨가쁘게 훑다가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시간에 쫓겨 현재의 민주주의로 건너뛴 한 교수의 결론은 '더 낮은 곳으로 연대'였다.

무개념의 10대... 온몸이 '민주주의 성감대'

한 교수 설명대로 그동안 살림살이가 나아지긴 했다. 재벌의 살림살이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지만, 그 꽃인 탄핵제도는 수구세력이 써먹었고, 지방자치를 제도화했더니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라는 게 아니라 토건세력이 성장했다. 민주주의 덕분에 밥을 먹은 것은 '우리'가 아닌 '저들'이다. 한 교수는 "죽 쒀서 개 준 꼴"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결과를 만들었다면 정권은 내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여러 차례 "부동산·비정규직·사교육 하나라도 해결했다면, '5년 (집권) 더하면 다른 거 해결하겠다'고 했다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내 삶이 좋아져야 목숨을 걸든지 말든지 할 텐데, 우리의 삶과 별 관계가 없으니 민주주의에 절박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그는 지금의 민주화 세력도 강하게 질타했다. 1980년 5·18 당시 전남도청에 남은 광주시민들을 길게 애도했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분이 돌아가시면서 광주의 약발은 다했다"고 했다. 밤새 집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던 지난해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386과 운동권이 옛날식으로 '으쌰으쌰' 하면서 촛불이 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대의 '무개념'을 부러워했다. 기성세대가 밑줄 긋고 머리로 배웠던 민주주의의 개념이 10대 청소년에겐 없었다. 대신 온몸이 '민주주의의 성감대'였다. 지난 10년 동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살았던 청소년들은 침해당했을 때 학교의 달라진 분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촛불을 들었다.

가능성은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1149만표를 받았지만, 이는 이회창 후보가 이전 대선에서 얻은 표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강부자', '고소영'이 얼마나 더 있겠냐, 사돈의 팔촌까지 합쳐도 300만을 넘지 많을 것이고 (이 대통령을 찍은) 나머지 850만은 누구겠냐"고 물었다. 비정규직이 민주노동당을 찍었을까?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은 누구를 찍었을까? 그의 해법대로 하자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간단하다. 이들을 우리 편에 끌어오면 된다.

이날 강연에서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그는 답답해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임금이 올라가고 내수시장이 열리면서 민주주의로 살림살이가 좋아졌던 경험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 회사는 어용노조를 만드는 대신 하청과 도급을 만들고 있다. 그는 "민주화된 다음에 비정규직이 생긴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700만~800만 명이고 그 가족까지 치면 인구의 절반인데, 비정규직 차별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면 안 될까? 촛불집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은 보여주지 못했다. 김경욱 이랜드노조위원장의 말대로 사람들은 상징으로 촛불을 켰지만, 1년 파업을 했던 노동자는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공부해야 했다.

100년의 결론은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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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권우성

한 교수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요만큼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서 연대해야 한다. 용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없는 사람만 분노해선 안 된다. 집 있는 사람들에게서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야 한다. 그는 최근 강연을 다녀온 동희오토 사업장을 말했다.

1200명 규모의 이 회사는 모닝 완성차를 만드는데 생산직 노동자가 모두 비정규직이다. 자본가에겐 '꿈의 공장'이지만, 노동자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도 적고 최저생계비보다 20~30원 많은 시급을 받는다. 이곳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최저생계비보다 10원 더 많은 시급을 받는 기륭전자 아줌마들이다.

'이렇게밖에 연대하지 못하면, 더 많이 연대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결론이다.

이날 강연 내내 한 교수는 '우리', '저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한 청중이 "우리는 누구고 저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제 얘기의 핵심은 '우리'를 넓히는 것, 우리 편이어야 하는데 저쪽에 가있는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한 교수는 강연을 마치면서 "길은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길은 복잡한 적이 없었다. 다만 마음이 복잡했을 뿐이다.

가만히 있으면 진다. 그는 "가만 있으면 이명박보다 더한 X이 온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홍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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