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여자 때문에 술 마신다

[공모-술버릇] 나를 취하게 하는 여자들의 속사정

등록 2009.12.12 12:46수정 2009.12.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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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을 때, 나를 아는 동년배들은 가끔 묻곤 했었다.


"너는 여자들의 신세타령이 그렇게도 좋으냐?"
"타령만큼 좋은 게 어디 있냐. 그 타령을 교과서에 실으면 학문이 되는 거다."
"까고 있네. 넌 인마,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틈만 보였다 하면 어떻게 해보려고. 그래서 그렇게 눈을 벌겋게 뜨고 귀를 쫑긋거리는 거라고, 아니냐?"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지 못했고 굳이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나는 여자를 참 많이 좋아한다. 그들의 웃는 소리를, 웃다가 갑자기 흘리는 슬픈 눈물을, 멍석만 깔아주면 끝도 없이 풀어놓는 대하드라마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런 취미를 누리기 시작했는가는 나도 모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구해내겠다는 어리석은 꿈을 꾸던 사춘기 무렵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의 삶에서부터 비롯된 내 술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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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술병과 술잔 ⓒ 조찬현


내가 갓난아기였던 시절, 벌거벗은 아들을 안고 찍은 사진 속의 어머니는 요정 같았다. 요정이 술꾼 남자에게 잡혀서 고생을 한다는 동화책 같은 상상이 아마 꽤 오랜 기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구해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일찌감치 가출을 해서 셋방을 얻는 등 나름 동분서주도 했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그것이 얼토당토 않은 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마 세상 모든 여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 삶의 세세한 부분에 들어가면 나이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어머니와 닮은 데가 있었다. 시집간 고모나 이모 혹은 사촌 누나들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 묻어 있다는 느낌이어서 낯설지가 않고, 지나치게 경이롭지도 않고 다만 친근할 뿐이었다. 친숙하다 보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횟수도 많고 입에서 절로 터지는 한숨과 탄식소리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라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는 대개 술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하긴 어떤 여자가 술기운도 없이 자신의 내력을 남자 앞에 늘어놓을 수 있으랴.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술도 없이 멀뚱하게 앉아서 듣고만 있을 수 있으랴. 그런 때의 술은, 술이 술을 부르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술을 청하는 형국이 된다. 때문에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가 않는다.


"저런 나쁜"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탁자를 치기도 하고, 지금 당장 쫓아가서 그 나쁜 인간을 잡아 죽이자는 듯 벌떡 일어서기도 하는 둥, 몇 번 흥분을 하다 보면 내가 술을 마시는지 물을 마시는지 거의 의식을 못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나의 술버릇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마치 내 안에 거대한 창고가 있어서, 술도 넣고 이야기도 넣고 이야기의 주인공까지도 넣어둘 수 있다는 듯이, 그야말로 머리와 가슴이 혼연일체가 되어, 눈으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멈춘다거나 딴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고 집요하게 쳐다보면서,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손으로는 끝도 없이 마치 로봇처럼 술 따르기를 반복하며, 입으로는 "응", "응", "그래서", "아 참", "어떻게 그럴 수가" 등등 추임새를 넣어가며 틈틈이 술 한 모금씩을 마셔대는 것이다.

모르는 여자의 하소연에도 울컥, 한잔 술을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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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이야기는 그 삶의 세세한 부분에 들어가면 나이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어머니와 닮은 데가 있었다. 사진은 <생활의 발견> 중 한 장면. ⓒ 미라신코리아


진지하고 진실한 이야기는 술도 취하지 않게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술이 취해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술은 어디로 갔는가. 자리가 끝나고, 이야기의 주인과도 헤어지고 나면, 그때 비로소 술은 나 여기 있다 하는 듯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필름이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의식은 오히려 갈수록 말똥말똥해지는 것 같은데 몸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예전 같지가 않다.

세상이라는 것이 단번에 번쩍 들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것처럼 자잘해 보이고, 가로수나 전봇대 같은 것들은 손가락만 살짝 튕겨도 날아가 버릴 듯이 가벼운 무슨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기막힌 이야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째 이렇게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냐" 등등 소리를 질러가며 이쑤시개 같은 것을 발로 걷어차기도 하고, 두 팔을 휘둘러 뿌리치기도 하고, 머리로 헤딩을 하기도 하며 밤거리를 걷고, 걷고, 또 걷는데, 그래도 어쨌든 집에까지는 잘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손가락이 부러졌거나 발목이 삐어 퉁퉁 부어 있거나, 이마가 찢어져 있거나 혹은 코피가 흘러 몸이 온통 게딱지처럼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는 이러지 말자, 술 마시면서 이야기 듣지 말자, 아니 여자를 보면 그냥 눈을 감아 버리자, 어쩌고 맹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웬걸, 세상 인구의 절반은 여자이고, 여자마다 각기 다른 슬픔과 억울함과 불합리를 인식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피하면 어디로 얼마나 피할 것인가.

하다못해 밥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부지중에 한숨을 내쉰다거나 창밖을 멀거니 보고 있다거나 하면 뭐라고 한 마디쯤 아는 체를 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람이 응대를 안 해주면 그대로 끝나지만 대응을 해주면 이야기를 유도하게 되는데 그렇게 일단 자리가 만들어지면 예외 없이 술을 청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그날 무엇을 하던 중이었던가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로 "아아, 네에", "그렇군요", "어쩌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하루를 좋게 망치고 마는 것이었다.

나이 들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이런 어이없는 술버릇은 나이가 들면 잡아지겠지 했지만 웬 걸, 천만에 세상을 조금씩 알면 알수록 거꾸로 심해지고 있었다. 마치 산다는 것은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이야기다, 하는 듯이 그렇게. 그리하여 앞니 세 개가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비극에 노출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찻집에서였다. 점심 뒤에 차나 한 잔 마시자 하고 들른 어느 찻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어느 여인의 '신세 한탄'이 발길을 잡았다. 아이들이 모두 장애를 가졌는데 그 원인이 여자인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죄인처럼 산다는 그 여인의 이야기가 어찌나 목을 컬컬하게 하는지 술을 아니 마실 수가 없었다. 한 병 두 병 소주병을 늘려가는 동안 자연 이것저것 질문을 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되었다.

벌건 대낮에 시작한 이야기가 밤이 깊어 자정을 넘고 새로 2시에서 3시 어느쯤에 찻집도 이제 문을 닫아야 하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등등 몇 가지 이유로 더 이상은 안 된다 해서 끝을 내기는 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뭔가를 하다가 중단한 것 같은 매우 불만족스런 끝이었다. 이 불만족이 나를 미치게 했던 것일까. 환장하게 했던 것일까.

술에 취하고, 인생에 취하고, 불만족에마저 취한 채로 나는 부득부득 자전거를 타고 밤길을 달렸다. 후배가 승용차로 집에까지 바래다 준다고 했지만 이까짓 것 문제 없다고, 세상 참 시시하다고, 고함을 질러가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고 얼마나 힘차게 밟았던가. 어느 순간 내 몸뚱이는 다리 난간에 마치 누군가 힘껏 내던진 찰흙 덩어리처럼 철퍽 부딪고 있었고, 나가떨어지고 있었고, 그리고 아무래도 걱정돼 그냥 가지 못하고 뒤따라온 자상한 후배의 승용차에 태워지고 있었다.

이만하면 제법 인문학적 술버릇 아닌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러,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인지 그냥 의식불명의 상태였던 것인지 하여튼 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비몽사몽간에 간밤의 이야기를 복기해보고 있는데 입안이 영 불편하고 이상했다. 무슨 모래알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그것들을 쏟아내려 하는데 입도 잘 벌려지지가 않았다.

선지처럼 응고된 핏덩이와 함께 쏟아진 그날의 누런 이빨 조각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거니와, 열흘도 넘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을 한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내 몸뚱이를 그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겠거니 내심 기대도 했다. 하지만 웬걸,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이야기에 취해 넘어지고 자빠지고를 했는지, 오른손 무명지 하나는 지금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지난 사건들을 돌아보면 내 자신이 참 기막히기도 하다. 무슨 이런 망해먹기 똑 십상인 버릇도 다 있는가.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술을 마시면 꼭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기물을 파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제법 인문학적인 버릇이 아니냐 어쩌고 속 보이는 자위를 해보기도 한다. 쩝.

덧붙이는 글 |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응모글


덧붙이는 글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응모글
#술버릇 #인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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