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인데 (당에서 세종시) 당론을 변경하면 박 전 대표를 (차기 대선) 후보로 뽑는것이 이상한 것 아니에요?"
인터뷰 시간이 1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였을까.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기자를 향해 반문했다. 곧장 그의 말이 이어진다. 이 의원은 "만일 (박 전 대표가) 워낙 인기가 좋아서 후보로 뽑았다 치자"면서 "그러면 (세종시) 당론을 또 바꿔야 하고, 진짜 대선 본선에서 (야당에게) 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답변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 의원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며 "(세종시 당론 변경은) 이러한 자산을 절단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 톤은 올라가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그는 여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경제 전문가다. 3선으로 당내 중진인 그에겐 '미스터 쓴소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여당의원이면서도, 나라빚 문제나 4대강 사업 등에 소신있는 발언을 해온 터다. 국회 의정활동 평가에서도 보수나 진보성향의 시민단체 양쪽으로부터 매년 우수의원으로 꼽힐 정도다. 그는 당 내에서 어느 계파 소속도 아닌, 중도성향 의원으로 분류된다.
당초 이 의원과의 이날 인터뷰도 경제문제가 이슈였다. 최근 유럽일부 국가의 재정위기로 불거진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과 우리나라의 재정문제였다. 그는 이미 과거 야당시절부터 꾸준히 나라 빚 폭증에 우려를 해왔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의 경고 메시지는 한층 더 컸다.
인터뷰 내용이 세종시 문제로 자연스레 넘어가자 그는 상당 시간을 들여가며, 당 지도부와 청와대에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를 냈다. 특히 22일 예정된 세종시 당론변경에 대한 의원총회 등을 두고, '비정상적', '당을 심각한 내분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세종시 문제에 말려들면서, 국가경영 제대로 못할수도"
우선 인터뷰 후반부에 밝힌 그의 세종시에 대한 생각. 이 의원은 참여정부때 행정부처를 옮기는 세종시를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크게 잘못됐다고 했다. 그는 "애초부터 행정부처를 분할하겠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였다"면서 "과거 야당시절에 힘이 달려서 제대로 막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 그래서 현 정부가 세종시를 수정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곧장) 하지만 문제는 수정안이 (원안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이미 법률안까지 다 만들어놓고, 공사도 한참 하고 있지. 일종의 법 질서가 된 상황인데, 이걸 뒤엎고 새로 해보자고 하려면, 뭔가 압도적으로 원안보다 좋거나, (원안을) 희생할 만한 값어치가 있어야지요."
- 정부쪽에선 나름대로 원안보다 좋다고 하는데요.
"(고개를 흔들며) 수정안 제일 큰 문제가 비수도권 지역에 수요가 없는 신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여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억지로 이것저것 집어넣고 있는 거예요."
그의 비판은 계속됐다. 매우 정교했고, 논리적이었다. 수정안이 갖는 국가적 차원의 자원배분 왜곡과 다른 지방과의 심각한 불공평 문제를 꼽았다.
"세종시 만든다고, 수도권에 있는 사람이나 기업이 당장 그쪽으로 내려갈 이유가 있어요?. 정부가 나서서 '뭐 해주겠다'고 하면서 다른 지방들만 그쪽으로 자원을 다 뺏기게 돼 있어요. 국가적으로 보면 자원분배의 왜곡이 벌어지고, 그 자체가 엄청난 비효율이지요."
- 그러니까 정부가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혜택을 주겠다고 했는데.
"(곧바로) '비슷하게 해준다'는 말 자체가 잘못됐지. 그렇게 될수가 없어요. 그러면 국가재정이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정부도 나중에는 '검토하겠다'고 발을 빼잖아요. 재정은 뻔해요. 그리고, 다른 지방의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은 이미 공사가 다 끝났고, 세종시처럼 해줄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만약에 뒤늦게 땅값이라도 싸게 해준다고 하면, 토지공사(현 LH공사)에 정부가 뒷돈 대줘야 하는데, 이러면 국가의 신뢰성만 떨어지게 되지요."
게다가 그는 "(수정안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다"고도 했다. 자유시장체제를 지지해 온 보수우파 정권의 정책방향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정권의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기도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세종시에 들어가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양해각서(MOU) 등도 체결하던데... 이것은 한나라당 정체성과도 맞지 않아요. 우리는 자유시장원칙을 발전시키겠다고 했는데, 정부와 여당이 기업 영업활동에 개입하고, (기업 보고) 어디에 가라, 마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이런식으로 정부가 자꾸 말려들어가면 앞으로 국가경영 제대로 못해요."
"당론변경은 박 전대표를 절단내는 일... 정권 재창출에 치명타"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나라당 내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친(親)이명박계 의원과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미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론변경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터다.
- 지금 당 지도부에선 (세종시) 당론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답답하다는 듯이) 참... 그렇게 하면, 당은 심각한 내분상태로 가게 되겠지."
- 사실 중요한 정책은 그동안 당론을 정해서 결정해오지 않았나요?
"물론 그것이 정상적이지요. 하지만 지금 세종시 수정안은 당에서 자연스레 나온 게 아니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과제로 던져 놓은것이지. 지도부가 그것을 받아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차기 대선에서 우리가 정권 재창출하는 데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커요."
그의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았다. 세종시를 둘러싼 당 내부의 갈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이 의원은 그동안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당론 변경에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대신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투표 방식으로 수정안을 처리하자는 생각을 내비쳐 왔다.
- 그런 방식은 현재 국회의 분위기로 봐선 수정안의 부결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잠시 생각한후) 당을 살리기 위해선 그런 방법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중요한 문제는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헌법기관인 만큼 스스로 이름 걸고, 책임지고 하자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심판받고... 그래야 한나라당이 치명타를 덜 입는 것이지요."
- 일부에선 아예 이번 기회에 차라리 분당하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것은 무책임한 이야기지요.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가만히 놔두겠어요. 자격도 없는 정당이라고 하지... 보수세력 갈라지면 선거에서 작살나도 할말이 없게 돼요. 분당하면, 야당만 신나게 하는 꼴이지..."
- 당론이 변경되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 우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박 전 대표 아니에요? 만일 당론 변경되면 (박 전 대표를) 대선후보로 뽑는 게 이상하지. 그래도 인기가 너무 좋아 (후보로) 뽑게 되면, (세종시) 당론을 또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우리 당을 어떻게 보겠어요?"
- 실제 대선이 진행되더라도 문제가 커질수 있다는 것 같은데.
"야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후보로 뽑혀도 말 그대로 대선 본선에서 떡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당 지도부가) 당론변경을 위해서 이상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박 전 대표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산인데, 지금 이 자산을 절단내겠다는 것이지."
"청와대 예스맨들은 파탄나기 전까지는 잘되는 줄 알아"
이러한 정치적 역학구도를 청와대는 모를까. 그래서 이 의원에게 물었다. 왜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안을 그렇게 밀어부치는지를 말이다. 그의 입에선 그리 속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것들이 잘 안 보이게 되지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대통령에게)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의) 예스맨들은 확실히 파탄나기 전까지는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거니까..."
그는 "지금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다"고 했다. 국민에 대한 정치의 신뢰 회복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나 여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회나 정부 모두는 국민의 머슴일 뿐이며, 국민이 주인"이라며 "머슴이 자기 멋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 중진의원과 인터뷰하고 있는 듯했다.
이 의원의 정치에 대한 소신은 경제쪽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특히 작년 금융위기이후 계속 논란이 돼 왔던 국가 부채 문제도 그렇다. 이 의원은 이미 야당시절이던 참여정부 때부터 나라빚 폭증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던 인물이다.
작년 국감에 나섰던 그는 "한나라당이 10년간의 좌파집권을 '부채공화국', '민생파탄 공화국'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있다"며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었다.
- 현 정부가 출범한 지도 곧 2년이 다 돼가는데요.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지난 2년 동안 외교분야, 대북정책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수 있지요. 작년 경제위기때 다른 선진국들과의 정책공조도 잘 진행된 측면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것은 일자리 만드는 문제가 크지요. 그리고 나라 재정이 크게 나빠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가) 별 문제의식이 없는 것에 무척 실망스럽지요."
그는 특히 앞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 의원은 "녹색성장이니, 뭐니 하면서 구호가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제대로 (미래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지난 2년 동안은 나라 재정으로 그럭저럭 잘 넘겨왔다"면서 "이 때문에 앞으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 정부는 국가부채비율이 다른 선진국 등과 비교해서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따라서 재정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적다고 하고 있는데요.
"(물을 마시면서) 국가채무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를 봐야지요. 하나는 국제비교를 같은 범주에 놓고 제대로 하느냐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특성을 정확히 봐야지요."
"지금 '대학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좋아하고 있지만, 몇년뒤 무서운 결과올 것"
그는 여기서 꽤나 길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라빚을 이야기하면서 단순히 부채 비율이 높으면 나쁘거나, 낮으면 좋다는 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의원은 가계 빚에 비유하면서, "빚이 많아도, 돈벌이가 잘되면 (빚은) 크게 상관이 없다"면서 "하지만 빚이 없거나, 조금밖에 없더라도 자신이 백수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 저축률은 계속 떨어지고, 그렇다고 자원이 풍부한것도 아니고, 외국을 상대로 국부를 쌓아놓은 것도 아니고, 일본이나 독일처럼 제조업이 탄탄한 것도 아니지 않아요. 일본이나 독일은 자신들의 화폐가 세계적으로 기축통화 역할까지 하는 나라지만, 나라 재정의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어요?"
- 그래도, 의원께서 예전에 밝힌 '사실상의 국가부채' 1439조원과 정부가 계산하는 710조원과는 차이가 큰데요.
"(종이에 써가면서) 국가부채라는 것이 일반정부의 총 금융부채를 말하는 것인데, 이 '일반정부'의 범주를 어디까지 넣을 것이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시절에 조사를 해보니, 2007년말 현재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690조~1150조원이 나왔어요. 유럽에서 정한 분류에 따라 만든 것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국민총생산(GDP)대비 부채비율이 70%를 넘게 되지요. 여기에 공기업을 비롯한 각종 준 공공기관이 많이 있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에도 부채가 많아요."
- 부채의 절대치도 문제지만, 증가 속도와 규모가 더 큰 문제 아닌가요.
"(끄덕이며)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사실상' 국가부채가 아니라, 정부기준 부채가 5년 만에 60조에서 130조로 늘었어요. 노무현 정부에선 260조원을 이명박 정부에 넘겨줬는데, 자칫하면 현 정부 말기에는 500조원이 될 거예요. 부채 증가 규모가 70조, 130~140조, 이번에는 240조로 늘어나는데, 그 이자가 붙는 속도가 굉장히 무서운 것이지요."
이 의원은 "현 정부 들어서도 각종 선심성 정책들이 나오면서 앞으로 이런 재정적자 폭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며 "얼마전에 시행된 '대학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도'가 당장 좋다고 하지만, 몇년 뒤에는 아마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가 또 요즘 들어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북한의 움직임이다. 자칫 삐걱해서 북한이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우리나라 정부가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약간 옮겨본다.
"독일이 통일될때 동서독 경제격차가 1대3 정도였는데도, 20년 동안 통일비용 때문에 힘겨워 하지 않았나. 우리는 남북한 경제격차가 10대1 정도라고 한다. 통일문제는 재정으로 밖에 안 되지 않나.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정부 재정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것이지요. 언젠가는 터질 텐데, 자꾸자꾸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고,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되는데..."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야당시절에 국가재정건전법 제정 등을 꾸준히 주장해왔고, 실제 작년에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나 의원들사이의 낭비성, 선심성 예산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나 의원들이 나라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내놓을 경우, 재정을 어떻게 절약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처음부터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도 제도적으로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국회차원의 예결산특별위원회가 1년씩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는 방식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청와대와의 관계를 물었다. 그렇게 정부를 상대로 쓴소리를 해대면, 아무래도 밉게 보이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이 의원은 살짝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지만, 좀더 직설적이었다.
"여당이라고 정부를 무조건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를 못해요. 물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최대한 협조하고 하지요. 그렇지 않은 일까지 하려고 하면, 국회가 뭐하러 있어요? 국민의 뜻에 따라서 큰 이념으로 뭉쳐야지, 한건 한건 다 (청와대와) 똑같으면 그건 졸(卒)이나 다름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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