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기업에 5조원 퍼주기, 국민이 봉인가

4·23 미분양 대책, 주택시장 대세하락 막지 못하고 자원만 소진할 뿐

등록 2010.04.26 16:19수정 2010.04.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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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4·23 미분양 대책을 내놓았지만 하락하고 있는 건설시장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뉴시스


한 제조업체가 있다고 치자. 이 제조업체가 호황기 때 무리한 경영판단에 따라 생산한 제품이 경기가 식으면서 대규모 재고로 남게 됐다. 그렇다고 정부가 각종 재원을 동원해 이들 기업의 재고를 대량으로 사줘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런 경우 보통 해당 제조업체들은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통해 재고를 해소하려 한다. 부도 위기에 몰릴 정도가 되면 원가 챙기기는 고사하고 10~20% 수준의 '땡처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시장경제에서 보아오는 상식적인 양태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표적인 산업이 있다. 건설업이다. 건설업은 아무리 시장이 침체되고, 부도 위기에 몰려도 제대로 된 할인판매를 하지 않는다. 생색내기식 분양가 인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시장 수요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다. 제조업의 재고에 해당하는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 수요가 원하는 가격보다 가격이 높다는 뜻이지만 분양가를 인하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들은 오히려 거품이 잔뜩 묻은 집을 마치 온 국민이 빚을 내서라도 사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각종 지원책을 요구한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건설 및 부동산업계 대변인(?)들을 동원해 "집값 폭등" "대세 상승" 등을 외치며 투기 선동을 부추겨온 조중동과 경제지 등 상당수 언론들도 가세한다. 마치 건설업계가 무너지면 국민경제 전체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이다. 절대 건설업계가 살아야 아파트 분양 광고가 상당한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자신들이 산다는 속내는 내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건설업계-부동산업계-부동산 광고에 목 맨 언론'이라는 삼각편대의 압박에 못 이기는 척 현 정부는 이른바 '4·23 미분양 대책'을 내놓았다. 이 정부의 주요 내각 인사들과 청와대 보좌진들을 포함한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계가 현 정부의 핵심 정치기반이자 '스폰서'이니 굳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지방 토건세력들에게 선물을 안겨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4·23대책'은 마치 국민경제 전체를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국내 기득권구조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다. 사실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감안할 정부가 아니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대책의 적실성을 따져보자.

'좀비' 건설기업에 수혈하는 4·23 미분양 대책

우선, 지금 건설업계 지원이 필요한 때인가. 그렇지 않다. <도표1>에서 볼 수 있듯이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270개이던 종합건설업체 수는 2001년 이후 1만3000개 수준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난 상태를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1998년 522개 업체가 부도났고, 2000년대 부동산 호황기에도 매년 150개 전후가 부도로 쓰러졌다.

그런데 주택시장이 침체하고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은 지난해에 부도업체 수는 87개에 불과했다. 이들 건설업체들의 평균수주액도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3년 78.8억원이었으나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된 2008년과 지난해에는 정부의 대대적인 토건 부양책 등으로 95.4억원, 96.4억원으로 늘어났다. 물론 우리 연구소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같은 지표 이면에 건설업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골병이 들어 있고, 빠른 속도로 '좀비기업'들도 늘고 있다. 성원건설과 남양건설뿐만 아니라 중견건설사들의 부도위기설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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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1> 종합건설업체 현황 (주) 대한건설협회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김광수경제연구소


이 같은 지표들이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정부의 막대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구조조정 회피로 한계선상에 이른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백보를 양보해 2008년 말~2009년 초에야 워낙 경제적 위기감이 증폭돼 있었기에 일정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이 필요했다고 하자.

하지만 정부 주장대로 지표상으로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 이제 건설업계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책으로 구조조정을 지체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언제까지 온 국민이 공공부문에서는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민간부문에서는 고분양가 아파트 사재기로 외환위기 이후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모두 먹여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또 다시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택했다.

또한 현 정부는 특정계층과 업계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현재 한국경제 위기에 대해 전도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건설업계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신규 분양아파트 갈아타기 수요 위주이기는 하지만 DTI규제를 상당 부분 풀었다. 지금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은 800조 원을 넘나드는 가계부채의 위기이지 건설업계의 위기가 아니다. 상당수 신문들이 금방이라도 금융시스템 마비를 불러올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저축은행의 PF대출 규모는 11.2조 원이다. 전체 예금취급기관 대출액의 1%, 가계부채의 1.4% 정도 규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기는커녕 가계가 빚을 더 내서라도 건설업계를 떠받쳐야 한다는 식이다. 이는 현 정부가 건설업계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국민경제의 위험성을 높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정부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허황된 '건설업계 대마불사' 논리를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특혜를 남발하면서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는 대통령의 기만적인 립 서비스로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보다 경제상황이 나쁜 미국과 유럽도 금융업계의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경제상황이 나쁜 미국과 유럽의 경우 금융업계의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금융시스템의 한 축도 아닌 특정 업계를 살린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심지어 재벌급 건설업체들인 10대 건설업체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무너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미 주택시장 대세 기울어

그렇다고 이번 대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대한주택보증의 환매조건부 방식 미분양 아파트 매입(3조 원)과 토지주택공사의 공공임대용 미분양 매입, 그리고 DTI 규제의 조건부 완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이미 대세가 기운 주택시장을 되살릴 수는 없다. 동조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건설업체들이 이번 지원책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 재정호흡기로 가까스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을 양산해 시장 수요를 뛰어넘는 공급 과잉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이른바 '시장 심리' 부양효과 측면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 정부는 '주택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 '강부자 정권'인 정부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보도자료까지 내며 '부동산 버블이 없다'고 부인했던 정부가 주택시장 침체의 심각성을 '공인'했다는 점에서 정부 의도와는 정반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속으로 얼마나 다급했으면...' 하는 모양새로 읽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정부의 건설업계 지원여력이 이미 상당 부분 소진돼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대책의 내용을 뜯어보면 정부 재정을 직접 동원하는 대책은 없고, 모두 각종 공기업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보증을 서는 식으로 공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그나마 이미 부채가 100조 원에 이르는 토지주택공사는 기존 공공택지 개발사업도 취소하고 있을 정도이고, 대한주택보증도 2008년 이래 보증사고 사업장이 늘면서 이번 대책을 위해 추가로 51조원가량을 차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주택시장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대세하락 흐름에 들어있다. 사상 최저금리와 만기대출 상환연장,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건 부양책,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수도권 전매 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 양도세/종부세/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 감면 등 대규모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주택시장의 반등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연착륙'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지난 한 해에만 가계부채를 45조 원이나 늘리며 거품의 규모를 더 키우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도권의 주택 가격과 거래량은 2008년 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지연됐던 건설업계 부도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건설 및 부동산 부문만 보면 2008년 말의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현재 주택거래 침체는 가계 소득 대비 너무 오른 집값의 정상적 조정 과정을 정부가 방해한 탓이 크다. 정상적인 집값 조정을 교란할수록 정부가 내세우는 '주택거래 활성화'는 요원해질 뿐이다. 여전히 국내 집값은 너무 높아 더 이상 빚을 내서도 집을 사줄 수요마저 거의 고갈됐고,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현 정부는 다음 정권에 '폭탄'을 떠넘기고 싶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막대한 자원만 소진하게 될 뿐이다. 언제까지 온 국민이 외환위기 이후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매년 80조 원의 공공사업 발주와 민간부문의 고분양가 아파트 사주기를 지속하며 모두 먹여 살릴 수는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부동산시장에 돈이 묶여 내수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일자리와 가계 소득은 계속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비대해진 건설업체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 발버둥 칠수록 부동산 거품만 커지고 소중한 자원은 낭비되며 지식정보화 시대의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활로만 막힐 뿐이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의 거듭된 정책 실패 때문에 잔뜩 부풀어오른 부동산 거품은 이미 한국경제 전체적으로 너무나 막대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풍선의 바람구멍을 열어 바람을 빼나가듯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고 건설업계가 냉정한 시장의 회초리를 맞도록 해야 한다. 그 길만이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진정으로 살리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국민을 건설업계의 '봉'으로 삼는 작태부터 멈추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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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향후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능력과 노력에 따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도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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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대책 #미분양 #부동산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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