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권우성
"'박변'은 이제 끝났어. 그에게 어떤 리더십도 기대할 순 없다고 봐."
지난 봄, 야권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꼽혔던 '박변', 즉 박원순(54)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돌연 영국행을 결심했을 때 저잣거리 사람들은 쑥덕대기 시작했다. 전국의 시민운동가들이 한데 모여 지방선거 대응까지 모색한 판에,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치에 나서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늘 뜻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정치권은 마치 그가 어떤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냄새를 풍겼다. 솔직히 그가 나서주기를 바란 건 정치권뿐 아니다. 야권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그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꾸준히 그를 밀었다.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그는 끝내 응수치 않고, 훌쩍 떠났다.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한나라당 태백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고 비난을 받았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리곤 한동안 뉴스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지난 2일 희망제작소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의 정치적 행보가 궁금했다. 진보진영의 무지개 정치 모색을 하던 중인데, 그의 고민은 무엇인지 다시 묻고 따지고 싶었다.
진보... 집권만 욕심 낸다고 될까"자신 있어요? 도덕성이나 전문성…. 진보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봐요. 이명박 정부가 워낙 형편없으니까. 그러나 그걸로 되나요? 집권만 한다고 될까요? 나는 진보가 훨씬 더 뼈저린 성찰과 학습, 대안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땅!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뒷골이 당겼다. 역시 근본을 고민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앞에서 이명박 정부가 땅을 파는 굴뚝공장 논리만 앞세우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진보가 미래세상에 대해 어떤 통찰력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묻고 있었다.
집권을 목표로 연합정치와 진보대통합, 야권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앙꼬'에 해당하는 콘텐츠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얼마 전 다람살라 티벳 망명정부에서 달라이 라마를 2시간 동안 단독으로 인터뷰했다는 박 변호사를 만나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과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 인터뷰를 하셨다고 들었다.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여수에서 '하얀 연꽃'이라는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시는 진옥 스님과 함께 갔었다. 법회할 때 그냥 뒤에 서 있으면 되는 줄 알고 따라갔었는데 단독으로 2시간이나 인터뷰할 기회를 주셨다. 다람살라는 굉장히 허름한데 뭐랄까 정신적 영감이랄까 그런 걸 많이 주는 도시였다. 평화를 기반으로 한 기다림의 철학이랄까.
그들은 고난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미션이나 운명을 긴 호흡으로 바라본다고 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 세상을 접하면 정말 두려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하지 않으니, 중국정부도 대응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 오는 11일(토)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 강연회를 한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굉장히 심각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 삼성전자? 공무원? PD? 기자? 모두 레드오션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일자리는 굉장히 많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보면 말이다.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 농촌 등 새로운 시대에 남들이 가지 않는 부분은 그야말로 지금 금만 그으면 내 땅이 되는 직업이 부지기수인데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레드오션에서 눈을 돌리면 블루오션이...- 레드오션이라고 하셨지만, 모두 그 분야가 잘 나가는 분야라고 생각한다."잘 먹고 잘 사는 게 인생의 목표여야 할까? 영혼을 팔며 줏대 없이 살아도 되는 건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생각을 돌리면 얼마든지 해볼 만한 일들을 많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말하는 건가."이번 강연은 새로운 직업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다. 실제로 1000개의 직업을 만들었다. 공정무역만 해도 아름다운커피가 작년 매출 21억 원에 이어 올해 매출목표는 60억 원이다. 벌써 30~40명의 일자리가 늘었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공정무역만 해도 10만 명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영국은 이미 공정무역 상품의 종류도 너무 많다. 이미 '윤리적 소비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소비라면 그 상품을 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면서 일자리도 만드는 일석이조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아름다운 커피도 네팔, 페루, 나이지리아산 커피를 비롯 초콜릿, 인스턴트커피까지 다양한 상품개발에 나선다. 세상에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할까 안타깝다. 조금만 그 변화를 따라가면 돈도 벌고 일자리도 생길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융합과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청년들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도 그 안에 많이 있을 것이다."
- 88만원세대를 위한 기획인가."청년에 초점이 가 있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 주부나 은퇴자들도 다 해당된다. 청년들이 하기 어려운 직업도 있다. 따라서 청년의 열정과 어른들의 지혜, 네트워크가 한 데 어우러지면 참 좋은 프로젝트로 변모할 것이라고 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아이디어와 어른들의 지혜와 경험, 네트워크가 만나면 일이 될 것이다."
- 어떤 종류의 직업들인지 궁금하다."녹색산업 내지는 녹색운동,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 사회적 기업, 국제관계, 인문학이나 교육 등에서도 새로운 일자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민박집도 그린투어리즘에 맞춰 시골농가를 싸게 구입해 로컬푸드로 된 아주 특별한 식사를 대접하는 등 다양한 일거리를 만들어볼 수 있다.
또, 한옥관리사나 한옥문화코디네이터. 이건 전통문화상품을 연결한 직업이다. 또 서울 아이들 시골로 유학 보내는 '산촌유학' 프로젝트, 이걸로 아이들의 정신질환이나 아토피 같은 도시병들을 고칠 수 있게 될 것이다.
폐가 콘도미니엄, 워터카페, 소믈리에만도 수십 종의 직업이 나올 수 있다. 건강식품을 체계적으로 안내하는 전문가들은 정말 무궁무진할 수 있다. 일본은 굉장히 개발이 많이 돼 있는 반면 우리는 거의 없다. 또 그린빌딩인증전문가, 그린주택설계사, 그린거리 컨설턴트, 바다환경미화원, 에너지 자립농장 설계사 등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하기조차 힘들다."
"이명박 정부 굴뚝공장 논리만... 미래세상 통찰력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