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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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학)을 살려 과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고 선배들에게 하소연한 끝에 처음 한두 달은 생각보다 쉽게 과외 일을 할 수 있었다. 실력보다는 싼맛(?)이 먹혀든 것이다(보통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수학영어를 가르치는 데 10만 원). 그러나 결국 소위 명문대생들의 영업력(?)을 견디지 못하고, 더 이상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생활비를 만들어주던 과외가 끊기니 앞이 막막했다.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커피숍 서빙, 교통량조사, 국가자격증 시험감독, 청소부, 고층 아파트 페인트칠 등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닥치는 대로 다했다. 하지만, 일의 종류와 투입시간이 벌이와 비례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푼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일은 고되고 시급은 터무니없었다. 이것저것 시간이 많이 들다 보니 정작 공부가 소홀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역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꾸준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선 좀 더 파격적인 일당의 일이 필요했다. 드디어 3학년 여름방학,
'좋아! 짧고 굵게 하는 거야, 짧고 굵게….'돈 앞에서 누구도 나의 의지를 가로막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런 각오를 했겠는가. 어떤 일이든 불법 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소득 직종을 알아보던 중, 얼마 전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시체 닦기 알바'가 문득 떠오른다.
참기 힘든 고소득의 유혹... '시체 닦기 알바' 들어는 봤나?시체 닦기 알바는 한번(?)에 10만 원 이상 준다는 소문과 '꼭 술을 먹고 해야 한다' '밖에서 문을 잠근다' 등 괴담을 함께 달고 다녔지만 그것 역시 문제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깨끗하게 닦아 드리고 혼백을 위로한다면 보람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리 힘든 일도 아닐 거야. 그래 결심했어.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뭘 못하겠어?'겁은 났지만 한 번에 10만 원 이상 준다는 소문은 정말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돈에 눈이 멀어 버린 나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어디서 한단 말인가?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큰 문제였다. 과연 '시체 닦기 알바'를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용기를 내어 동작구에 있는 한 병원의 영안실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향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무실로 쭈뼛하며 들어서자 중년의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맞이한다.
"뭔데?""저기…, 아르바이트 문의하러 왔는데요.""여기 사람 안 뽑아,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할 일도 없어….""아는데요, 저…, 시… 체… 닦…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뭐? 시체??""네….""야, 이 녀석아! 어떤 유족들이 이름도 모르는 새파란 녀석에게 시신을 맡기냐? 누가 그러던? 여기 가면 그런 일 준다고?""아니…, 누가 그런 건 아니고요, 궁금해서 찾아왔어요.""허허허,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요즘 그렇게 일하기가 힘드나? 너 정말 시체 한번 보여줄까? 내가 알기론 그런 일은 일절 없으니, 쇼크 받고 정신과 치료 안 받으려면 공부나 열심히 해, 이 녀석아!"15일에 100만 원 준다는 고소득 알바 '탱크청소'결국 '시체 닦기 알바'는 미친놈 소리까지 들으며 시도해 보지도 못했지만, 파격적인 일당 욕구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서울에서 고소득 알바를 구하지 못한 나는 방학이 되어 고향(여수)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짧고 굵은'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지역 생활정보지에 내 눈을 번쩍 뜨게 한 줄광고가 하나 있었으니,
"탱크청소, 15일 100만원, 대학생 단기알바 환영, 여천공단 내 OO정유"오로지 고액의 알바를 필요로 했던 나로서는 작업환경이나 난이도 등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바로 업체에 연락을 하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 물탱크 청소쯤이라 몸으로 때우면 될 것이라 얕봤는데, 난이도는 둘째 치더라도 목숨까지 담보로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장을 확인한 나는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가면 쪽팔림은 둘째 치더라도 2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