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ATM 기계윤씨는 물론 동내 주민들은 이 기계가 하나은행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김현준
은행기계로 어떻게 대부업체 서비스가 이뤄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니 정작 해당 은행에선 기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조사해 봤더니 훼미리 뱅크라는 업체에서 소유 및 관리를 하고 있었어요. 하나은행은 물론 대부업체와도 제휴를 맺고 설치했다고 하더라고요. 소송을 준비하면서도 하나은행 쪽에서는 본인들 역시 이러한 사실의 피해자라고 했고요."그런데 추가로 밝혀진 사실에 학생들은 또다시 당황했다. 해당 기계가 대부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긴 하지만 윤씨에게 대출을 해줬다고 주장하는 러시 앤 캐시(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와는 전혀 제휴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윤씨가 대부업체의 버튼을 실수로 눌렀더라도 기계와 제휴된 웰컴론(웰컴크레디라인대부) 쪽에서 돈을 주는 것이 정상이었다. 도대체 러시 앤 캐시가 어떠한 과정으로 윤씨에게 대출을 해줬다는 것일까?
사건을 조사하며 예기치 못한 사실들이 드러나자 사안의 심각함을 느낀 학생들은 한 달이 넘도록 윤씨와 함께 러시 앤 캐시(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를 상대로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씨를 향한 러시 앤 캐시 측의 독촉은 계속되어갔다. 윤씨에 의하면 업체로부터 하루 빨리 대출계약을 인정하라면서 협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마침내 11월 1일 담당 지도 변호사인 배금자씨와 함께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를 상대로 대출계약은 무효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했다. 그들은 소장을 통해 이렇게 진술했다.
"이 사건 기계에는 피고(에이앤피파이내셜대부)가 계약의 상대방이라는 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어떠한 표시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기계에는 '하나은행 현금자동지급기'의 표시와 '웰컴론'의 표시만 되어있을 뿐 그 어디에도 피고에 대한 표시가 없습니다...이 사건 기계를 관리하는 훼미리뱅크와의 어떠한 업무 제휴도 없는 피고가 대부계약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 기계의 전산망을 통해 원고에 대한 정보를 가로챈 조작과정이 있었다고 추단할 수 있습니다."아무리 개인정보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한민국의 고객정보는 도대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언론에 간단히 보도된 것처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학생들이 제기한 의혹이 너무도 컸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나 통신 요금 등이 연체되고 나서 얼마 후 갑자기 걸려오는 대출업체의 전화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자가 취재 도중 모 저축은행 직원으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넘겨받아 자신들의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사건이 지닌 중대함에 비해서 이 내용을 자세히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을 이 세상이 필요로 하고 있다"기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지난 2일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 본사를 찾아갔다. 회사 쪽에선 소송이 제기된 만큼 본인들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출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는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본인들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윤씨를 협박했다는 것 역시 부인했다.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친절과 서비스 교육은 철저히 시킨다고 한다.
또한 ATM기계를 사용해 러시 앤 캐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는 무려 10단계 이상의 화면을 거치며 도중에 핸드폰 인증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 회사 관계자는 대부업체인 것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느냐며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