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왼쪽 뇌 80%가 죽었다...왜냐고?
주72시간 노동... '밤샘근무' 없애야 한다"

[복지는 권리다-장시간 노동②]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완성차업계 노동자들

등록 2012.01.19 18:46수정 2012.01.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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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시혜다? 보수진영이 유포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꼴지 복지'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시혜가 아닌, 보편적 권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8부로 나눠 한국의 복지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기획에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가나다 순) 등 6개 단체가 함께합니다. 자신의 사례를 기사로 올려주시거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편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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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1시 광주 서구 내방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자동차 조립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선대식


"왼쪽 뇌의 80%가 죽었어요. 계속 식물인간 상태로 있거나 의식을 찾아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죠. 젊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고교 실습생 김아무개(19)군의 아버지 김승현(가명·50)씨의 말이다. 10일 광주의 한 병원에서 만난 김씨는 "미세하게 눈꺼풀과 손이 떨린다"며 "재활치료를 위해 오늘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고 했다. 전남 영광에서 올라온 김씨 부부와 대학생 딸은 의식 없는 김군을 하루 종일 간호한다.

김씨는 "어린 아들이 직원들과 똑같이 밤샘근무를 포함한 장시간 노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주야 근무조가 2시간 잔업을 포함해 하루 10시간씩 일한다. 토요일에도 특근이라는 이름으로 8시간씩 일한다. 주 58시간 노동이다. 김군은 최대 72시간까지 일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들이 8월 말 기아차 실습생으로 들어갔는데,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 정도로 주말에도 바쁘게 일했다"며 "차에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 작업이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했지만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 일을 계속 했다, 이렇게 몸을 혹사하는 장시간 노동인지 알았다면 더 적극적으로 말렸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운동 좋아하고 건강했던 아들이 장시간 노동에 쓰러졌다, 기아차 노동자들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밤샘근무를 포함한 장시간 노동이 없어져야 우리 아들처럼 또 다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노동계 최대 현안은 밤샘근무를 포함한 장시간 노동 폐지다. 김군 사건과 맞물려 완성차 업계 노조는 올해 밤샘근무 폐지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선다. 정부 역시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 적극 관여하고 있다. 10일 오후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밤샘근무 폐지는 모두의 꿈이었다,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새벽에 아파도, 할 수 있는 일 없어 가슴 아팠다"


오후 11시 광주 내방동에 있는 기아차 광주공장. 많은 직원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촘촘히 늘어선 '소울' 차체에 각종 부품을 장착하고 있었다. '샤시반' 노동자들은 높이 매달린 차체 아래에서 고개를 위로 든 채 작업에 열중했다. 한쪽 라인에서는 노동자들이 15kg짜리 시트 등받이를 힘겹게 차량에 부착하고 있었다.

차체, 도장 작업은 어느 정도 자동화가 이뤄졌지만, 조립 라인은 아직도 노동자의 근육이 필요하다. 기아차의 시간 당 생산대수(UPH)는 42대다. 노동자들은 차량 1대당 85초 안에 자기가 맡은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공장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에는 2시간 동안의 생산 목표치(84대)와 실시간 생산 대수가 나타났다.


경력 10년의 한 노동자는 "밤새 서 있는 것도 힘든 일인데, 육체노동을 하며 밤새는 것은 수십 년 경력자에게도 고된 일"이라며 "새벽에는 다들 충혈된 눈이다, 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2공장에서 '스포티지R'의 시트를 조립을 하는 최경한(가명·36)씨 역시 "2005년 입사했지만, 아직도 밤샘 근무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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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1시 광주 서구 내방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자동차 조립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선대식


"야간조는 오후 8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7시 30분까지 일한다. 집에 들어가 잠을 자려 몸부림치지만, 깊게 못 잘 뿐더러 4~5시간밖에 못 잔다. 결국 밤에 몽롱한 상태에서 일한다. 수면장애와 만성피로를 달고 산다. 학교 다닐 때 축구 선수였을 정도로 튼튼했지만, 지금은 2~3일에 한 번 한의원에 가서 어깨에 부항을 뜨고 피를 빼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그는 "잠을 못자니까, 신경이 아주 예민해진다"고도 말했다. 김씨는 "집 근처에서 주차단속반이 사이렌이 울린 일 때문에 구청까지 가서 대판 싸웠다"며 "거실에서 아이 엄마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노는 것도 시끄럽게 들려, 본의 아니게 신경질을 내게 된다"고 전했다.

장시간 노동은 무엇보다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약하게 한다. 그는 "야간 조에서 일할 때 퇴근 후 바로 집에 도착하면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을 못 볼때가 많다"라며 "한 번은 새벽에 아이가 갑자기 아팠을 때, 아내가 내게 전화를 했지만 당장 조퇴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꽂은 아이를 보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밝혔다.

2달 전부터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양성주(36)씨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일할 때도 많지만, 밤에 일하는 것보다 낫다"며 "지난해 결혼했는데, 야간 조일 때는 아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2002년에 입사한 박준영(가명·32)씨는 "오전 0시 30분에 중식을 먹는데, 항상 소화가 안 된다"며 "만성 위궤양으로 인한 고통이 크다"고 전했다.

올해 완성차 업계 밤샘근무 폐지 논란

완성차 업계는 2000년대 초부터 밤샘근무 폐지와 주간연속2교대 전환을 요구해왔다. 건강 문제 탓이다. 독일 수면 학회는 주간 맞교대 노동자의 수명이 주간 노동자보다 13년 짧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의 완성차업체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55시간이다. 이는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다. 또한 연 노동시간은 2400시간으로, 주간 2교대를 실시하는 외국 완성차업계 노동시간(1500~1600시간)보다 800시간 더 많다.

지난해 5월 유성기업 사태는 우리 사회에 야간 노동의 문제점을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회사에 주간연속 2교대 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며 공장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강제 진압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현대 기아차도 주간 연속 2교대를 시행하지 않았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완성차업계 노조가 올해 야간 노동 철폐를 위해 파업을 포함한 공동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4일 현대·가아차가 제출한 연장근로개선 계획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이 계획서에서 1400명 이상의 노동자를 신규채용하고, 3599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해, 2013년에는 주간연속2교대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이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박치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정책고용실장은 "인력 부족으로 고교 실습생이 공장에서 일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인력 충원 계획은 숫자가 적고 정규직을 채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며 "결국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 강도만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금체계에 대한 논란도 크다. 완성차 업계임금은 현재 시급제다. 주중 하루 2시간 야근과 주말 8시간 특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이 많지 않다. 한 노조원은 "7년차 임금이 230만 원 수준으로, 야근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150만 원 정도일 것"이라며 "야근과 특근을 하지 않아도 생활임금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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