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에 무좀약 챙겨온 약사분, 잊을 수 없어요"

[찜! e 시민기자] 매일같이 쌍용차 분향소 소식 전하는, 이명옥 시민기자

등록 2012.04.25 14:04수정 2012.04.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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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한 공장에서 3년 동안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현실이 되어 버린 곳. 바로 쌍용자동차 이야기다. 지난 5일 22번째 쌍용차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비를 맞으며 노숙을 자처하고, 분향소를 철거하려는 경찰과 맞서기도 하며 버텨온 20여 일. 4월 넷째 주 '찜! e 시민기자'의 주인공은 그 서늘한 하루하루를 기록해온 이명옥 기자다(☞ 이명옥 기자의 기사 보기).


이명옥 기자는 분향소가 설치된 5일부터 매일 매일 현장 스케치 기사를 써오고 있다. 비록 톱기사로 오르거나 세상에 널리 회자된 기사는 없었지만 묵묵히 그날의 현장을 담아내면서 그곳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줬다. 바로 이런 열정과 우직함이야말로 '시민기자 정신'이 아닐까. 시민기자 활동 10년차, 그동안 써온 기사만 700편이 넘지만 '처음의 정신'을 지켜오고 있는 이명옥 기자가 고맙고 반가웠다.

24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오늘도 '현장'을 지키는 이명옥 기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쌍차 남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분향소 떠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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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시민기자 ⓒ 이명옥 제공


- 간단히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길거리에서 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씩씩한 '쌈닭' 아줌마 노동자이며, 여성 가장입니다. 현재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 백수고요. 그러다 보니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네요." 

- 정치, 노동, 여성, 문화 등 참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써오셨습니다. 3월 말에는 선거 관련 기사를 부쩍 쓰셨는데, 4월부터 갑자기 쌍용차 문제에 집중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2011년 한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으로 그의 남매 자녀가 고아가 됐을 때, 페이스북 친구들 100명에게 후원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쌍용차 고아 남매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알려줬다며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죠. 그 후 쌍용차 고아 남매 돕기 후원회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마침 때를 같이한 '희망버스'에 집중하느라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죽음이 이어진 것을 보며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하게 됐습니다."


- 분향소를 지키는 분들은 보통 몇 분이나 되나요? 그리고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수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분향소를 지키시는 분들의 수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대여섯 분 안팎이 침낭 하나로 20일째 거리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들은 하루에 100여 분이 채 안 되고요. 경찰의 침탈이 이뤄진 다음 날은 훨씬 많이들 오시더군요. 요즘은 시민상주를 정해 그분들이 하루씩 수고해 주시고 계십니다."

- '죽음의 현장'을 매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감정적인 무게감이 심할 텐데, 지난 20여 일 동안 가장 그런 감정을 이기기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처음 분향소를 차리던 날, 대여섯 차례의 경찰 침탈이 있었습니다. 얼굴도 없는 종이 영정을 붙들고 분향을 하는데 경찰이 덮쳤습니다. 경찰에 둘러싸여 있던 사람들은 크든 작든 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도 부상을 입었고요. 억울하게 죽은 분에게 분향을 하는 동안 방패로 찍으며 영정을 빼앗고 현수막을 탈취하는 야만의 나라에 사는 것이 싫더군요. 그 후 총선 다음 날인 12일 평택 분향소는 부숴졌고 대한문 분향소엔 서울 중구청으로부터 철거 계고장이 날아왔습니다."

- 반대로, 그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와 문화, 예술, 언론, 학계 모두가 '더 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때와, 트위터 글을 보고 살그머니 분향소에 필요한 물건들을 놓고 가는 시민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습니다. 시민의 힘을 모아서 또 한 번의 희망을 만들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각성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모일 때 희망의 크기도 커져갑니다."

"안간힘 다해 버티는 이들... 시민들 관심이 커다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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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희생 노동자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이명옥 시민기자 ⓒ 이명옥 제공


- 분향소에 만난 시민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어떤 분인가요?
"며칠 전 트위터에 무좀약이 필요하다고 트윗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약사라는 여성분이 근육통약, 파스, 무좀약 등을 골고루 챙겨 오셨더군요. 성함도 밝히지 않고 그저 약사라고만 하시며 조용히 돌아가셨습니다. 공지영 작가도 기억에 남네요.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에게 풍성한 저녁을 사주고, 쌍용차 노동자 연행 소식이 들리자 또 분향소로 달려왔더군요. 진정으로 사람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 분향소를 매일 지켜온 사람으로서,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을 제안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사실 분향소를 지키는 분들은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계십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커다란 힘이 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매일 저녁 대한문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가능한 시간에 오셔서 함께해 주세요. 지방에 사는 분이시라면 천안, 부산 등 지방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곳에 찾아와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쌍용차 소식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5월 18일까지 분향소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매일 현장 기사를 쓸 생각인가요?
"네. 그들의 소식을 꼭 전해야 하니까요. 매일 비슷한 형식으로 기사를 쓰니 너무 식상하다는 지적도 있어서, 이제 방식을 좀 바꿔 분향소에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하거나 현장 표정을 스케치해볼 생각입니다."

- 지난 10년 동안 700여 편의 기사를 쓰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편씩 꼬박꼬박 기사를 써오신 셈인데, 자신의 기사가 가지는 강점과 약점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점은 제가 시민단체 쪽에 관여를 많이 하고 있다보니 다른 시민기자들보다 큰 문화 행사나 공식적인 행사에 갈 기회가 많은 편이라 그런 기사를 쓸 기회가 있다는 점이랄까요. 반대로 약점은 그런 행사에는 대개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도 함께하다 보니, 그들보다 신속하게 기사를 정리해내지 못해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기사를 쓴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쓰지 못하고 형식적인 행사 소개 기사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올해로 시민기자 활동 10년째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쓰고 싶은 기사가 있다면?
"쌍용차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을 정리하는 심층 르포 기사를 꼭 쓰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른 시민기자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모든 시민은 기자입니다. 전국에서 활동하시는 시민기자 한 분 한 분이 <오마이뉴스>를 직접 운영한다는 마음으로 활동해 언론주권을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찜E시민기자 #이명옥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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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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