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제2의 산별노조운동에서 돌파구 찾는다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⑨]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등록 2012.08.06 12:05수정 2012.08.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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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1998년 산별노조의 첫 닻을 올린 보건의료노조의 활동이 벌써 14년하고도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2012년 3년의 임기를 시작한 산별 6기 지도부는 "제2의 산별노조운동"을 선포했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희망이 산별노조운동에 있다는 것과 산별노조운동의 제2기 도약이 필요하다는 평가와 진단에서 출발했다.

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의 성과

험난한 노동운동 환경 속에서도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운동이 거둔 성과는 뚜렷하다. 우선, 조합원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IMF와 세계적인 경제위기,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침, 신인사신경영 공세, 인력감축과 비정규직화 흐름, 악랄한 노조탄압 속에서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수는 1998년 3만5000여 명에서 2012년 현재 4만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2004년 산별총파업 후유증으로 6000명 가까운 조합원이 이탈한 것을 감안한다면, 14년여동안 1만4000여 명이 늘어난 셈이다. 산별노조가 아니었다면, 신자유주의의 폭풍 아래서 조직확대는커녕 유지·보존조차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공세적이고 성과적인 조직확대사업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규지부 건설사업, 간병인·요양보호사 조직화사업, 보건대·간호대생·실습생과 같은 예비노동자 조직화사업 등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지역지부 건설사례도 생겨났고, 근로조건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조직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산별활동사례도 나타났다.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사업의 실험과 토대마련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꼽는다면, 의료공공성 강화투쟁이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건강권 쟁취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활동이 적극적으로 진행됐고, △ 본인부담 상한제 실시 △ MRI 등 고가의료장비에 건강보험 적용 △ 암환자 병원비 건강보험 적용 확대 △ 환자식사에 건강보험 적용 확대 △ 의료민영화정책 추진 저지 △ 영리병원 도입 저지 △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 추진과 제도화 추진 △ 의료기관평가제도 개선 등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근로조건 개선을 뛰어넘어 산업정책과 제도를 바꿔내기 위한 산별노조의 모범적인 활동사례라 할 수 있다.


2004년 주40시간제 실시를 계기로 14일간의 산별총파업을 통해 보건의료산업 주5일제를 쟁취한 사례나, 2007년 산별교섭을 통해 2384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1541명의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과 단체협약을 적용한 사례, 만성적인 인력부족문제와 인력수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운동 사례는 노동자간 격차 해소, 비정규직없는 병원 만들기,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소중한 산별활동사례들이다.

산별노조의 위력이 가장 잘 발휘된 곳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악랄한 탄압, 공공병원 매각·민간위탁, 정규직 업무에 대한 외주화 등에 맞선 산별투쟁이다.


식칼·똥물테러·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왕따로 유명한 청구성심병원의 노조탄압 분쇄투쟁, 대량해고와 공권력 투입에도 굴하지 않고 전개했던 217일간의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투쟁,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한라병원의 300일간 파업투쟁, 단체협약 해지와 용역깡패를 동원한 세종병원의 민주노조 사수투쟁, 보훈병원·인천성모병원의 식당 용역화저지투쟁, 수원·진주 등 지방의료원 민간위탁 저지투쟁, 노조결성을 빌미로 폐업한 안산한도병원 정상화투쟁, 전남대병원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승계투쟁 등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조직의 총력을 동원해 산별투쟁을 전개했다.

개별사업장 노조의 힘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정부와 자본의 총공세를 산별노조의 힘으로 돌파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산별노조를 건설함으로써 예산의 집중, 인력의 집중, 투쟁력의 집중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조합비의 50%를 중앙․지역본부로 집중시켰고, 특별기금(산별기금, 투쟁기금, 장기투쟁사업장 생계비기금, 정치기금, 통일기금, 전임자기금, 해고자 생계비 기금, 쟁의적립금, 파업사업장 생계비대여기금, 미조직기금,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여 산별투쟁과 산별활동을 전개했다. 

본조 중앙 및 지역본부 사무처 간부도 98년 당시 39명에서 2012년 현재 55명으로 늘어났고, 250여 명의 지부장·전임간부들이 기업과 직종, 지역을 뛰어넘어 산별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산별교섭의 현실, 산별교섭 제도화의 필요성

그동안 노동조합활동을 돌아보면, 개별 사업장에서의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인력확충, 비정규직 문제 해결, 신인사신경영 대응, 노조활동 활성화, 노사관계 발전 등 어느 하나라도 보건의료정책이나 노동정책과 맞물리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즉, 경쟁 위주의 보건의료체계와 돈벌이중심의 병원경영, 의료영리화정책을 바꿔내지 않고서는 사용자측의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고, 타임오프제도, 복수노조제도, 필수유지업무제도, 단체협약 시정명령,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 등 각종 법·제도·정책을 바꿔내지 않는다면 민주노조 고립화, 산별노조 무력화, 현장조직 파괴 공세를 돌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15년 가까운 산별노조운동은 현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무기였고,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산별노조운동의 현실은 척박하다.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이 기업별노조를 바탕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노조활동의 주축은 여전히 기업별 노조활동에 머물러 있다. 또한,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들의 기업별의식이 여전히 강하며, 산별노조에 대한 사용자측의 거부감도 매우 높다.

노사관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교섭을 보면, 산별교섭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도 매우 취약하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1998년 산별노조를 건설했지만, 정작 산별교섭이 시작된 때는 6년이 지난 2004년이었고, 그후 6년간 산별교섭이 진행됐지만 2009년 사용자단체가 해산되면서 산별교섭도 중단되고 말았다. 그나마 6년간의 산별교섭도 교섭대표단 구성 거부, 노무사에게 교섭권 위임, 교섭불참, 교섭도중 퇴장, 노조요구안 수용 거부 등으로 파행의 연속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이 보여준 긍정성은 뚜렷하다. △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보건의료산업내 최소한의 통일적인 기준 제시 △ 인력, 비정규직 등 보건의료산업 노사 공통의 문제를 산별 차원에서 해결 △ 의료공공성 강화, 보호자없는 병원 실현 등 기업별교섭에서 다루지 못하는 산업별 의제 논의 △ 보건의료정책․제도의 변화를 위한 노사공동활동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에서 노사가 체결한 산별중앙협약서는 ① 산별기본협약 ② 보건의료산업협약 ③ 고용협약 ④ 임금협약 ⑤ 노동과정협약 ⑥ 부칙 ⑦ 부속합의서 등 7가지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그동안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소중한 성과물이며, 산별 노사관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산별교섭에 대한 사용자측의 우려도 사실상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사용자측은 파업 남발, 정치투쟁 빈발, 이중교섭·이중파업으로 인한 교섭비용 증가, 임금·근로조건의 상향식 평준화 등을 우려했지만,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된 산별교섭에서는 파업이나 기업별 노사갈등이 줄어들었고, 산별교섭 타결 후 개별 사업장의 현안요구들이 빠르게 타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임금·근로조건에서도 개별 사업장간의 격차를 고려하기 때문에 사용자측의 부담은 오히려 줄었고, 예측가능한 교섭으로 인해 교섭기간과 교섭비용도 줄어들었다. 문제는 산별교섭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산별교섭 참가, 교섭대표단 구성, 교섭권 위임 등 매년 산별교섭틀을 만드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있고, 교섭방식을 둘러싸고 노사가 너무나 많은 역량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산별교섭을 안정적으로 정착·발전시키기 위해서는 △ 산별노조가 요청하는 산별교섭에 사용자의 참가를 의무화하고 △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거나 사용자들이 연합하여 산별교섭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 산별교섭의 대상을 산업정책적 의제로까지 확대하며 △ 산별협약의 효력을 확장하는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것은 산별노조에도 엄연히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나, 기업별노조체계 위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 노동법을 산별노조가 전반적인 노조 조직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산별노조체계에 걸맞게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측면, 그리고, 노사관계의 갈등과 파국을 막고 산별 노사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신속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법개정에 착수해야 하고, 사용자측에게 산별교섭을 거부하는 빌미와 명분을 제공하는 각종 지침을 철회해야 한다.

제2의 산별노조운동이 희망

수년째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가 무성하다. 산별노조운동이 정체되고, 노동자와 국민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산별노조 무용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확인하지만 산별노조는 △ 노동자간 격차 해소 △ 근본적인 고용안정대안 마련 △ 비정규직과 영세 중소사업장 미조직노동자 근로조건 개선, 조직확대 △ 중층적이고 다변화된 교섭구조 확립, 교섭비용 줄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 확립 △ 노동조합의 산업정책 개입력과 영향력 확대, 사회공공성 실현 △ 폭넓은 사회연대 실현과 우리 사회의 공정성·합리성·민주성 확대라는 순기능 역할을 담당해왔고, 또 담당해나갈 조직체이다.

산별노조의 지향점과 목표는 명확하고 옳다. 문제는 산별노조의 실천이 느리고, 착실한 준비를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산별노조에 대한 사용자측의 태도와 인식, 산별노조시대에 걸맞은 정책과 제도 미비 등 발목을 붙잡고 있는 장애물이 많다.

보건의료노조는 △ 산별교섭 정상화·제도화 △ 산별노조 주체역량 강화 △ 10만 조직화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집중적인 조직화사업 전개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제2의 산별노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부족점을 고치고 각종 장애물을 뚫고 산별노조운동의 본궤도로 진입해야만 지금의 성과 위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과 전망이 열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입니다.
#산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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