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리·뜬봉샘... 지명에 얽힌 사연 어찌 그리 딱 맞나

[2013 전국투어- 광주전라⑩] 땅 이름으로 짚어 본 전북의 과거, 현재, 미래

등록 2013.06.23 16:39수정 2013.06.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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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호남인구 충청권에 추월당했다' <전북일보>  6.13.
'만년 낙후 호남, 인구마저 충청에 밀리다니'  <광주일보> 6.12.

광주·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호남권 인구가 90여년 만에 충청권에 역전됐다는 지역언론들의 보도가 그리 낯설지 않다. 최근 충청권의 세종시 출범과 행정수도 이전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주류언론임을 자처하는 신문들은 전국 인구통계 발표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1925년 근대적 개념의 인구조사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에 추월당했다'며 흥분들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이농 현상으로 인해 농촌지역의 인구 이탈 현상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전북은 물론, 전남과 광주를 포함한 호남권역의 인구감소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라고 분석했다. <광주일보>는 '만년 낙후 호남, 인구마저 충청에 밀리다니'란 제목의 사설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사설은 "광주와 전남·북 인구가 처음으로 충청권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영남권은 그렇다 치더라도 충청권에도 밀리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고 설명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호남권(광주 147만1801명, 전남 190만6335명, 전북 187만1592명)의 인구는 524만 9728명인데 반해 충청권(대전 152만9085명, 충북 156만7548명, 충남 203만6661명, 세종시 11만6842명)은 525만136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호남권보다 충청권 인구가 408명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호남권의 인구유입 전망은 썩 밝지 못하다. 전남 나주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인 '빛가람도시 조성공사'는 더디기만 한데다 LH본사를 경남 진주시로 빼앗긴 전북의 '전주완주혁신도시'도 동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이 지역은 기업 유치도 지지부진하다. 농어촌은 고령화로 갈수록 인구가 줄고, 도시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외지로 떠나는 바람에 인구유출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다시 고개 든 전주·완주 통합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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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안정행정부의 '전주완주 통합' 권고에 따른 전주시 기자회견 장면. ⓒ 전주시청


"이러한 심각한 상황은 무엇보다 역대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지역언론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영남권 산업화와 수도권 중심의 정책, 그리고 최근에는 충청권에 행정도시와 투자가 크게 늘면서 상대적으로 호남권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북지역은 최근 인구유출이 심화돼 인구 187만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어 같은 호남권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이 높은 편이다. 한 때 200만명 이상의 인구를 유지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선거 때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이번에는 일찌감치 등장했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문제가 바로 그것. 전주·완주 통합논의는 새만금 방조제와 간척사업 등 인근 개발사업과 함께 여야는 물론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막론하고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의 주요 민심자극제로 이용돼 왔다.

전북은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전주·완주 통합논의로 뜨겁다. 인구 64만8천명인 전주시와 8만 6천명인 완주군이 통합되면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다며 통합론에 먼저 불을 지피는 쪽은 역시 정치권이다. 완주군보다 전주시가 더욱 적극적이다. 최근 인구통계조사 발표 이후 더욱 힘을 받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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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홈페이지에 게시된 행정통합 관련 공지내용. ⓒ 완주군청


지난 18일 전주시의회 행정위원회는 전주시가 제출한 '전주시·완주군의 행정구역 통합 제안' 건에 대해 찬반 표결 결과 '찬성 의견'을 채택했다. 그러나 전주시와 완주군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완주군민들의 26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찬반 단체들이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결정 방법으로 찬성 의견이 높은 전주시는 시의회 의결로, 찬반 의견이 비슷한 완주군은 주민투표로 각각 실시하도록 권고했다. 전주·완주 통합은 전주시의회의 의결(21일)과 완주지역의 주민투표(26일)로 결정된다.

그런데 전주시의회는 21일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전주시의회 의견제시의 건'에 대해 통합을 찬성하는 의견을 채택했다. 시의회는 이날 참석의원 32명 가운데 28명이 통합에 찬성, 압도적인 표차로 통합을 찬성했다. 따라서 전주·완주 통합은 이제 완주지역의 주민투표 결과에 달렸다.

1992년 9월 전주시의회 제88회 임시회에서 최초로 거론돼 온 전주시와 완주군 통합논의는 그동안 수차례 반복돼 왔으나 번번이 무산돼 왔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의해 선거 때만 되면 고질병처럼 등장했던 이슈가 이번에는 결국 주민투표로까지 가게 돼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주(全州)의 옛 지명은 완산(完山)인데다 전주와 완주의 전(全)과 완(完)은 모두 '온전하다'란 뜻을 가진 지명이기 때문에 이미 통합은 기정사실"이라는 통합론자들의 주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전북은 지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은 곳이다.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이번에는 주민투표까지 가게 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명에 얽힌 사연... '용담댐'·'뜬봉샘'

먼 옛날 선조들이 지어놓은 땅 이름(지명)이 훗날 딱 들어맞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땅 이름이 현실과 같아지는 예언성 지명을 들여다보면 경탄할 정도다. 전북지역은 비록 산업화는 더디지만 산세·지세·수세가 뛰어나고 풍광이 좋아 가는 곳마다 지명에 얽힌 재미난 사연들이 많다. 선조들이 지은 지명에 얽힌 사연들로 전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았다.

전북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의 금강 상류에 있는 용담(龍潭)댐은 지명과 그대로 맞아떨어진 대표적인 곳이다. 용담(龍潭)은 '용 용(龍)'자에 '못' 또는 '깊을 담(潭)'자의 지명으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뜻을 지녔다. 용담댐이 생기기 전에는 용담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왜 큰 물줄기가 없는 이곳의 지명에 '못 담'자가 들어가는 용담인지 의아해했다고 한다. 다만 주위의 안천과 주천과 정천이라는 '내 천(川)' 자가 들어가는 마을의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나와 용담면에서 하나로 만나 작은 강을 이루어 금강 하류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봐 왔을 뿐이다. 이처럼 용담댐이 생기기 전에 용담면에는 작은 강이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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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와 마이산 전경. ⓒ 진안군청


그런데 이곳에서 1990년부터 댐이 건설되기 시작해 지금은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더구나 댐이 완성되고 물이 수몰지역에 차오르자 용담이라는 말 그대로 용(龍)의 형상이 나타났다. '용'자와 더불어 깊은 연못을 뜻하는 '담'자가 들어가도록 지었던 선인들의 선견지명이 서려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댐 완공 후 수몰선을 따라 물에 잠겨 호수의 형상이 용의 모양을 이루며 용담면이라는 이름과 실제 현실이 맞아떨어지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용이 살 수 있는 땅이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감탄해하고 있다.

진안 용담댐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를 달리다 보면 장수(長水)군이 나온다. 이곳은 진안군과 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하고 있는데, 지명에 담긴 '긴 물'이란 뜻을 가진 곳이다. '천리 물길이 만들어낸 곳'이라고 장수군은 자랑한다. 물이 맑기로 유명한 '수분리'를 분수령으로 남으로는 섬진강, 북으로는 금강이 흐른다. 물의 뿌리가 되는 샘이 있는 고장엔 사연도 많다. 특히 '뜬봉샘'은 훗날 금강의 발원지가 됐다. 뜬봉샘 주변은 금강뿐만 아니라 섬진강의 분수령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장수군은 최근 도로마다 지역 특성과 역사성, 마을이름 등이 반영된 새 도로명을 확정했다. 의암로, 용성로, 호비로 등 장수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적 명칭을 부여한 도로를 비롯해 개실길, 뜬봉샘길, 느랕길, 문성길 등 마을 옛 지명을 반영했다.

온천 나오는 '목욕리'· 개천에 물 '옥구'... 예언 적중

그런가 하면 개 한 마리가 지명을 바꾼 곳도 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 가면 의로운 개를 기린 의견비가 서 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거령'이라는 지명이 개나무골을 뜻하는 '오수(獒樹)'로 바뀐 곳이다. 1000년 전 거령현(지금의 임실군)에 사는 사람이 기르던 개가 불길에서 주인을 살리고 자신은 불에 타 죽었다 하여 그 땅을 오수라고 이름 지었다.

마을 이름과 훗날 변천과정이 똑같은 곳도 있다. 전북 정읍시 산외(山外)면 목욕(沐浴)리의 지명은 '머리를 감으며 몸을 씻는다'는 뜻의 '목욕'이란 뜻을 지닌 곳이다. 그런데 지명 그대로 이곳은 1999년 1일 채수량 3100t 규모의 거대 온천 수맥이 확인돼 온천하나 없던 인근 주민들을 활짝 웃게 만들었다.

전북도로부터 온천지구로 지정 고시된 이곳은 예로부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욕지'로 이곳 물을 먹고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소문이나 나환자들의 은신처였던 골터가 실재했는가 하면 마을 가운데에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우물이 솟아나는 등 물에 얽힌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온천 부존지가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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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개발 현장 전경. ⓒ 전북도청


임실군 강진면에도 옥정리(玉井里)가 있는데, 이 마을은 '옥처럼 맑고 찬 샘'의 뜻을 지녔다. 조선 중기에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멀지 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적중한 곳이다. 1965년 이곳에 농업용수 공급과 전력생산을 위한 '섬진강 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수위를 높였고 운암면의 가옥 300여 호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돼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이 바로 '옥정호'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 규모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33.9km의 방조제를 쌓아 조성된 광활한 간척지 개발사업의 중심에 있는 군산시 옥구군(沃溝郡)의 지명 또한 현실과 잘 들어맞는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둘러싼 갯벌의 중심에 있는 이곳은 새만금사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명을 풀이해 보면 '물댈 옥(沃)'자에 '개천 구(溝)'자를 합한 이 곳은 '개천에 물을 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새만금사업으로 개천에 물을 대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으니 이 역시 지명이 들어 맞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전주완주 통합 #새만금 #용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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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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