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김종성
우리 조상들의 돋보이는 미적 감각은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서문을 향해 가는 길에도 볼 수 있다. 마치 성벽을 지키는 초병들처럼 크고 작은 오래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성곽을 따라 이어져 있다. 성벽 밖을 향해 신묘하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 적송(赤松)이라 하여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붉은 피부를 드러내는 소나무, 거대한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엔 벤치가 놓여있어 다리가 아프지 않아도 앉았다가 가고 싶게 한다.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산성 일대에는 주민들이 정성으로 돌보고 지켜온 소나무 숲이 72ha나 펼쳐져 있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노송이 넓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때 마을 주민 303명이 국유림을 불하받은 후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숲을 유지하고 있다. 이 소나무 숲이 좋아서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니 그럴 만하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작고 귀여운 새, 동고비들이 재잘거리며 노래를 불러준다. 절로 기분이 상쾌하다.
곧이어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며,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인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마주한다. 입구에서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려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처진 소나무'를 지나, 2층 내부로 향했다. 이곳엔 '무망루(無忘樓) 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수어장대를 둘러보자니 나무 위에서 까마귀들이 저음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인근의 군부대에서 사격연습을 하는지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간간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헬리콥터까지 지나가고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긴장되는 게, 그 옛날 불린 콩 몇 알로 버티며 임금과 백성을 지키고자 한 고단한 조선병사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