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리본
이승훈
벌써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매일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의 소식을 찾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사고 후 160시간 가량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그곳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작은 풀뿌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곳 모두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사고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곳보다 더 절망스럽고 살기 힘든 곳은 많이 있겠죠. 지금 당신이 갇혀 있는 그 고철 선박의 작고 컴컴한 바다감옥 속이 그러할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래선 안 됩니다. GDP 2만 달러를 달성했다고 수없이 자랑하고,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며, 문명인의 나라, 문화인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하지만 사고를 지켜보는 우리들은 이성을 잃은 야만인이며 도적 떼입니다. 인간됨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 무리라고 하는 이들은 잘못을 서로에게 전가하기 바쁩니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분노를 마치 파렴치한 집단의 광기처럼 몰고 가고 있음에 더욱 제 마음이 무너지고 슬퍼집니다.
북괴의 모략이라니요! 죽음을 자신들의 정치놀음의 재료로 이용하는 이들을 볼 때면 그들을 믿고 따랐던 것이 치욕스럽고,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당신을 기리고 당신의 영혼을 달래야만 하는 이 시간에 왜, 당신의 부재에 대한 슬픔이 아닌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 편지 안에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제 모습이 너무 미워집니다. 제 자신을 탓하기 보단 그들의 잘못만 탓하게 되는 것 같아 더욱 더 미워지고 미어집니다.
당신을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어서 너무 죄송스럽고 너무 미안합니다. 당신이 당한 사고는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지금 제 마음은 어둡고 딱딱한 좌절의 바닥을 내려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너무 한탄스럽고 절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당신, 단 한 명만이라도 돌아온다면. 이 세상 빛을 쫓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만 돌아온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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