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표 경전철은 '착한 공약'인가?

[검증] 8조5500억 규모 경전철... '토건 사업 vs. 교통 복지'

등록 2014.05.30 20:33수정 2014.05.3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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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삶의 질에 도움이 돼야 하고 서울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중심이 되는 개발이 돼야 한다. 전시·토건 행정은 이에 맞지 않다. 내가 발표한 경전철 등의 공약은 1000만 서울 시민의 발을 만드는, 교통 소외 지역에 대한 '교통 복지'다."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의 말이다. 공약으로 내건 서울시 경전철 사업이 '토건 행정'이 아니며 '교통 복지'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기조 아래 박 후보는 60대 주요 공약 가운데 '사람을 위한 교통' 항목으로 경전철 사업 조기 추진을 내걸고 있다.

경전철 공약은 지난 서울시정과 연계돼 있다. 박 후보는 현직 시장이던 지난해 7월, '서울시 도시 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하며 10개 노선(신림선·동북선·면목선·서부선·우이신설 연장선·목동선·난곡선 등 7개 노선, 위례신사선·위례선·지하철 9호선 4단계의 신규 3개 노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오세훈 전 시장이 운을 뗐다가 중단됐던 경전철 사업을 기존보다 확대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한 재정만 8조5533억 원(국비 1조1723억 원, 시비 3조550억 원, 민자사업비 3조 9494억 원, 개발사업자 분담금 3766억 원)이 들어가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전체 재정의 50%가량은 민자사업(사회기반시설을 민간이 대신하여 건설·운영하는 사업을 말함)으로 진행하겠다는 안이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민자사업이 결국 공공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민 및 시민사회단체와 충분한 협의 없이 '속도'를 강조하며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박 후보가 평소 강조해온 '꼼꼼 행정'에 반하는 행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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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24일 오후 2시, 서울시청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9개 노선, 총 85.41km의 경전철 건설 계획을 담은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했다. ⓒ 서울시


"경전철, 결국 또 다른 토건사업" vs. "교통 소외 지역 위한 복지"

우선 경전철 사업 자체가 '교통복지'가 아닌 '토건사업'이라는 반론부터 제기된다. 나상윤 공공교통 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서울 시내 교통 체계 개편은 필요하지만 경전철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노면 전차의 경우 경전철에 비해 1/3 수준의 비용밖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며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왜 꼭 경전철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짚었다.


그는 "경전철은 결국 또 다른 토건사업의 하나다, 경전철이 생기면 땅값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라며 "땅 주인들이야 선호하겠지만 전월세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원주민들은 밀려나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대규모 민자 방식을 채택한 것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팀장은 "교통 혼잡 등의 어려움이 있다면 경전철 사업을 할 수도 있지만, 꼭 민자 방식을 택할 필요는 없지 않냐"라며 "시 예산으로 1~2개 노선을 추진해보고 사업평가를 통해 효과가 있는지 타당성 검토를 한 후 순차적으로 하면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결국 경전철은 앞으로 4년 시장 임기 내에 모든 노선을 추진하기 위한 토건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후보는 시 재정사업으로 경전철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로 '긴 공사 기간'을 든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정사업으로 하면 20년도 더 걸린다"라며 "순차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고 민자 협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매년 3000억~4000억 원을 투입하면 계획된 경전철 노선을 모두 완공하는데 20년 이상 걸린다, 건설 지연에 따른 손실은 시민의 부담이 되고 '어느 지역을 먼저 착공할 것이냐'를 두고 지역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라며 민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로 자신의 지역에 경전철을 유치하려는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등의 이유 때문에 속도를 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자사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2013년 7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 로드맵. ⓒ 서울시


그러나 민자사업 방식을 도입할 경우, 공공성이 훼손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상윤 정책위원은 "결국 민간 운영자는 이윤을 목적으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말대로 경전철이 '교통복지'라면 공공성이 중시돼야 하지만 민간사업에 운영이 맡겨진 만큼 '이윤 추구'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 정책위원은 "민간에서 운영하게 되면 서울시로부터 받는 보조금을 늘릴 온갖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서울시는 경전철을 무인 운전·무인 역사 시스템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서울시는 량(경전철 차량수)수가 적고 기술이 발전해 문제 없다고 하지만, 지나친 편의적 발상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경전철 민자사업, '임기 내 착공' 위해 너무 위험한 방식을 택했다"

또한 결국 서울시의 재정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권 팀장은 "초창기에 민간자본이 들어가면 서울시 재정이 적게 들어가는 걸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운영이 시작되면 운임 보전 등의 수익 보전 때문에 시에 재정적 부담이 가게 돼 있다"라며 "박 시장 임기 내 착공을 위해 위험한 방식을 택했다"라고 일갈했다. 도시철도 요금과 경전철 요금을 동일하게 하고 그 차액을 민자 사업자에게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 결국 서울 재정에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박원순 후보 캠프의 강희용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8호선의 경우 공공으로 운영하지만 동일 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적자를 시에서 보전하고 있다"라며 "(요금 보전은) 민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수준이 적절하냐의 문제로 현재 요금 수준이 낮은 게 사실이다, 요금 보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하철 9호선 사례를 통해 민자사업을 운영할 좋은 모델을 세워갈 수 있다는 것이 박 후보 측 설명이다. 강 대변인은 "지하철 9호선은 최소운영수입보장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실제 수요에 근거한 비용 보전을 추진하고, 사업자 수익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라며 "이렇게 가면 공적인 재원을 들이지 않고도 공공성은 발현될 수 있게 운용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전철도 '지하철 9호선' 혁신 모델을 도입해 공공성을 담보하면서도 민자 사업의 장점만 끌어내도록 조처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전철 사업 진행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논의 과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권 팀장은 "인프라를 바꾸는 사업은 신중해야 한다"라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의견 수렴하겠다던 박 시장이 정치인이 됐는지, 찬성하는 사람들 위주로 공청회를 하고 의견을 수렴했다고 한다"라고 날을 세웠다. 지난해 9월 공청회가 열리긴 했지만 찬성하는 인사 6명, 반대하는 인사 2명으로 진행돼 '형식'에만 그쳤다는 지적이다.

이에 강 대변인은 "당초 민자 사업으로 확정했던 것이고, 민자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가 핵심"이라며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면서 민자사업의 구조를 짤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경전철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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