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우산'이 되어주겠다는 산재보험, 50년 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근로복지공단
난간 하나 없는 아파트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도 보고, 옥상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들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지하실이 없어 맨홀 뚜껑을 열고 20~30m를 기어가는 일도 있답니다. 바퀴벌레와 이름모를 벌레들이 득시글하던 도시의 바닥을 이 악물고 기어가는 일도 있다네요. 설치를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니, 매번 설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그렇게 기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맨홀 아래로 들어갔던 한 노동자가 질식해서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감전을 당하는 일도, 눈이 많이 온 날엔 미끄러져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일도 그냥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떤 설치노동자는 겨울이 막 지난 봄에 담벼락을 탔는데, 그냥 무너져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다친 건 애써 참을 뿐, 무너진 담벼락 비용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고 하네요.
믿기 힘든 이런 업무환경에서 이분들은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신분은 다 다릅니다. 어떤 센터에서는 개인사업자라 하기도 하고, 어떤 센터에서는 하청의 하청을 거쳐 고용된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이 노동자들의 우산이 될 수 있을까요?(근로복지공단은 올해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근로자의 우산이 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3년 전 전봇대에서 떨어져서 척추가 나간 마포구 센터 김아무개 기사도 일을 안 하면 패널티를 부여하고 일감을 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갔다고 그날을 회상했습니다. 전봇대에 올랐고, 그날따라 발 딛는 곳이 헐거웠는지 부러지면서 안전벨트가 끊어져 떨어진 것입니다. 바로 응급차를 불렀고, 차 안에서 회사에 스케줄 조정 전화부터 했는데 돌아온 센터장 대답이 가관입니다.
"다치면 어떻게 해."마치 수리 기계가 고장이 나면 '어머 어떻게 해' 하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 처리 좀 해달라고 하면, 센터 사장들은 "문 닫아야 된다"고 공통적으로 얘기한다고 합니다. 김 기사 역시 그랬고요. 개인적으로 하자고 많이 설득을 당했고, 결국 김 기사는 산재신청은커녕 서비스센터로부터 단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보호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사에게 딱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해피콜'입니다. 어떤 고객이 인터넷이 다 설치된 뒤 홈시어터를 연결해달라고 기사님에게 요구를 했습니다. 홈시어터를 써본 일도 없고, 그건 본인의 업무가 아니었던 데다가, 빨리 다른 집으로 일을 하러 가야 했던 기사님은 정중히 고객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고객은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해피콜만 와봐라."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기사들이 그놈의 '해피콜' 때문에 해야 했던 일은 참 다양했습니다. 장롱도 옮기고, 냉장고도 옮기고, 어떨 때는 '야동'을 다운받아주기도 하고, 포털사이트 아이디를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기사님들은 고백합니다. 이력서를 대신 써줬던 분도 있고, 애초에 안 되던 컴퓨터를 그저 기사님이 눌러 봤다는 이유로 고장난 컴퓨터 비용을 통째로 물어주기도 했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해피콜'때문입니다. 해피콜이 뭔지, 기사님들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기사님들의 서비스가 이뤄지고 나면, 본사(본사가 지정한 하청업체)가 고객에게 전화를 겁니다.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셨냐"는 질문에 고객들은, 100% 만족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별 생각없이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LG유플러스센터 자료에 따르면, 만족도 평가 기준은 100점, 99.1점 미만~98.1점 이상(5만 원~15만 원 차감)/ 98.1점 미만~97.1점 이상(5만 원~20만 원 차감)/ 97.1 미만~ 96.1 이상(10만 원~30만 원 차감)/ 96.1 미만(15만 원~40만 원 차감)입니다. 당신이 별 생각없이 1점만 깎아도, 그런 사람이 1명 이상만 되어도 기사님의 월급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해피콜, 정말 이름 한 번 잘 지었습니다.
간혹 어떤 기사님이 몇 시에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안 온다고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 수도 있겠죠? 그런 전화 한 통 당 기사에게 5만 원의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그것 말고도 벌금 형식으로 내야 하는 돈들이 쌓이면, 기사들은 아예 일을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적게는 5년에서 20년까지 이 일을 하신 분들이 직업을 바꾸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온갖 스트레스에 억눌리고, 해피콜에 짓이기는 이분들의 감정노동은 대체 어찌 보듬어야 할까요? 몸이 아파도 못 받는 산재보험, 마음이 아파도 못 받는 산재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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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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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전봇대 오르다 죽어요"...A/S기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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