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장을 찾아 여기저기 뛰다가 간신히 도착해 원고지를 받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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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백일장 주제는 '먼지'이다. '먼지'에 대한 단상들을 떠올려보았다. 황사도 생각나고 미세먼지도 떠오르며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도 연상된다. 다들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에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글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작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화장한 일이 생각이 났다. 화장 후 먼지가 되어버린 그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그녀는 밤 사이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했다. 바로 전날까지도 얘기하고 웃고 밥을 먹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얼마나 황망했던지.
선하기만 했던 그녀가 편안한 곳으로 가셨기를 빌며 그녀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등을 껴안듯이 항아리를 안고 토닥인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에 관한 이런저런 단상들이 꼬리를 문다.
눈앞에서 가족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걸 본다는 건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그 순간에는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된다. 자식에 대한 기대랄지, 형제간의 서운함이랄지, 원망 같은. 이런 모든 게 사소하게 느껴지고 존재 자체로도 얼마나 축복인지를 절감한다. 비록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삶의 관성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지지고 볶는 일상이 여전해 지지만.
한줌의 재가 뿌려지고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걸 보며, 이래서 먼지 하나에도 우주가 깃든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생각했다. 누군가의 일생이 담긴 먼지.
'무'인 상태로 왔다가 먼지로 사라지는 일생에 관하여 나름 심도 깊게(?)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시간 안배에 실패한 나는, 시간 안에 원고지에 적어 내는 게 너무 바빴다. 손글씨를 써본 지도 백만 년 만이라서 글씨도 삐뚤빼뚤.
마음은 급하고 그럴수록 손가락이 구부러져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내용은 인생을 달관한 자의 글인데 글씨는 초등학생이 발로 쓴 거 같다. 이런 몹쓸 부조화. 필체가 좋아야 내용이 별로라도 한번쯤 더 봐줄 것 같은데 암호 수준의 글씨는 내가 봐도 눈이 피곤하고 해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번 읽어볼 틈도 없이 원고를 냈다.
이 나이에 백일장에 나온 것은 창피한 일일까?심사를 기다리는 3시간 동안 한수산 작가님과 김별아 작가님의 북 콘서트가 있었다. 한수산 작가님은 <군함도>를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던 중 군함도 생존자로부터 들은 사실과 그분의 근황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듣는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료수집 했던 시간을 제외하고도 그 책을 쓰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출만 했을 뿐.
김별아 작가님은 글은 쓰고 싶고, 아이들은 어리고, 그래서 아이를 업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단다. 아이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장편소설을 쓰다니.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글을 쓰는 과정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발표의 시간이 왔다. 심사위원장이 나와 발표에 앞서 한마디를 한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단다. 내용은 상당히 좋은 글이지만 글씨가 읽기 어려워 탈락한 글도 있단다. 이건 내 이야기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대상으로 다가할수록 두근거리는 맘으로 끝까지 기다렸지만 결과는 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