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중국 방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동했다. 북한은 위기 때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친분을 과시했다. 1990년 9월 중국을 방문해 덩샤오핑과 만나는 김일성 주석(왼쪽부터),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과 악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습, 시진핑 주석과 만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초청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집권 후 첫 유력국가와 한 정상회담 상대는 결국 중국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불과 한 달 앞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두 달 정도 앞두고 이뤄진 방중이라는 점에서 전격적이다. 또 4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시 주석이 자신의 특사로 평양에 보낸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지도 않았었다는 점에서, 파격이라 할 만하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행보는 1950년대말부터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이어진 '중소분쟁' 시기에,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했던 '시계추 외교'를 연상케한다.
1950년대 말부터 김일성 주석은 '스탈린 우상화'를 비판한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수정주의'노선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반소-친중'노선을 취했다. 그러다가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고, 중국이 문화대혁명(66~76)을 겪으면서 문화혁명 지도부와 홍위병이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로 공격하는 상황이 되자 60년대 후반에는 거꾸로 '친소-반중'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소련과 중국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정책을 쓰는 한편으로는 '주체사상'을 정립하면서, 등거리 외교를 대외기조로 했다.
사회주의권내 패권경쟁 관계에 들어간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경쟁적 구애'에 나섰고, 북한은 61년에 소련, 중국과 각각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해 경제지원 및 군사동맹을 확보했고, 이후에도 양측에서 대규모 원조를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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