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형식으로 준비한 강연회에는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좌)이 함께 하였으며 김동현 문학평론가(우)가 사회를 맡았다.
고성미
1925년생, 현재 나이 94세. 김석범 선생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고 목소리 역시 카랑카랑했다.
선생의 기억은 그의 나이 열 서너 살, 일본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제주도 땅을 밟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옛날, 기역 받침이 있었던 '한락산'과 '푸른 오름'과 '바닷냄새'를 기억하는 선생의 아스라한 시선 너머에, 제주 소년이 <어린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던 생의 첫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생의 표현대로 당돌하고 건방진 <어린 민족주의자>는 서울을 통해 압록강을 건너 중경 임시정부를 찾아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하지만 몇 년의 세월 속에서 현실은 <어린 민족주의자>를 다시 일본 땅으로 원위치시켜 놓고 말았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그는 처음으로 절망적인 삶을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인생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허무주의에 빠져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혼돈의 시기에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까마귀의 죽음>이었다. 이 소설 속에 방황하던 그의 청춘이 몽땅 들어있다고 회상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제주도 본섬에서 4.3을 직접 경험하지도 않고 어떻게 4.3에 대한 소설을 쓸 수 있었는가? 라고."
이 질문은 일본에서 <화산도>를 발표했을 때도 똑같이 돌아왔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소설(私小說)의 그 반대편에 <화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험하지 않은 것을 체험한 것처럼 써야 했던 고뇌는 상상 곧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을 낳았고 결국 이것이 <화산도>의 소스가 되어 주었다.
"집필 과정에서 나는 커다란 허구의 세계를 공중에 띄워놓고 나를 거기에 집어넣었다. 상상력은 현실을 돌파하는 힘이 되어 주었고 그 힘이 <화산도>를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체험하지 않고도 2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장편을 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의 무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허구와 거짓은 다르기 때문이다."
<화산도>는 정치 소설이다. 반면, 사소설을 정통으로 내세우던 일본 문학계는 그의 소설에 대하여 순수예술에 반한다며 깍아내렸다. 하지만 그는 순수예술인 체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침을 날린다.
"너희가 말하는 순수예술이란 정치 사회에서 도망치기 위해 문학을 빙자한 것에 불과하다."그는 현실을 넘어서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수문학이라고 정의한다.
'4.3정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생은 한마디로 일축한다.
"친일파를 중용한 이승만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 나의 4.3정신이며 친일파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4.3 정신을 계승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4.3 평화공원의 제1관에 누워있는 백비를 일으켜 세워 정명해야 한다"는 선생의 단호한 주장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