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식 때의 양승태 대법원장.
이희훈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선고를 앞두고 '양승태 대법원'이 분주하게 움직인 행태가 추가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사법부 숙원사업과 민감한 재판 결과를 맞바꾸려 한 정황도 나왔다. 적어도 이 시기 대법원에서 국민의 존재는 안중에 없었다.
"윈윈"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아래 특조단)이 지난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임종헌 대법원 기조실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둔 2015년 2월 8일에 문건 하나를 보고받는다.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이 선고될 경우, 박근혜 정부 정당성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정아무개 심의관이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재판 결과에 따른 대법원의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가 아주 구체적으로 담겼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청와대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크게 염려했다. 보고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며 정당성에 상처를 입은 "청와대와 여권의 국면 전환 조치 방향이 사법부를 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 중 하나로 "중점 추진 사법정책 반대, 사법부 예산 편성 비협조"를 꼽았다. 그러면서 "예산 편성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BH의 전통적인 사법부 견제 방법이었음"이라고 부연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대목은 공직선거법 유죄 선고가 났을 때 청와대와 여권을 상대로 세운 대응 계획이다. 보고서에는 청와대 관심 사건의 재판 결과와 사법부 숙원 사업을 맞바꾸려는, 낯 뜨거운 일도 적나라하게 기재됐다.
우선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 등 관심 사법 현안 신속 처리"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불만 완화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원세훈 사건도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정될 것이라는 암시 제공 효과"를 거두자고 계획했다. 또한 상고심을 최대한 빨리 선고함으로써 "불만·오해 기간 최소화"하고, 항소심 판결 직후에는 "비공식적 라인을 통하여 위와 같은 취지·입장 전달"하여 청와대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선고 시점이나 결과를 두고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허탈하게 만든 판결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협상 카드'로 여겨졌다. 대법원은 "BH 설득의 구체적 방안"으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2015년 3월 26일 대법원 판결이다.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 논란을 부른 판결이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는 외면한 채 오로지 청와대의 마음을 살 계획에 몰입한 결과였다.
통상임금 판결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법무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판결 취지를 별도로 설명하고, 피드백까지 수집해 보고서로 작성했다. "재판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 노력한 것으로 봄"이라거나 "판결 선과 결과에서도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고민을 잘 헤아리고 이를 십분 고려하여준 것으로 받아들임"이라는 내용이었다.
"사법부 존재 근거 스스로 붕괴시켜"... 그러나 형사고발은 안 해
특조단은 "재판에 영향을 실제 미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고심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미명 하에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라면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장치를 사법부 자신이 부인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 존재의 근거를 붕괴시켰다"라고 총평했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리스트는 존재했으나 체계적인 인사 불이익을 준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성향과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하고 불이익을 줄 수 있을지 검토한 그 자체만으로도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결론 냈다.
하지만 이처럼 심각한 사법행정권 남용을 확인하고도 형사 고발은 하지 않기로 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특조단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에 대하여 형사적 구성요건 해당성 여부를 검토하였으나,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한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고, 인터넷 익명게시판 게시글과 관련한 업무 방해죄는 성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며, 그 밖의 사항은 뚜렷한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라고 밝혔다.
'셀프조사'의 한계도 노출됐다. 특조단은 전·현직 판사 49명을 대면 혹은 서면으로 조사했지만 당시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실 조사 논란으로 출범한 특조단 역시 최고 윗선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마무리한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양 전 원장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검찰의 강제수사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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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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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의 동반자" '양승태 대법원'이 은밀히 작성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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