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돼 있었다. 그리고 변하는 날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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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공방의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내전이었다. 어제까지 트친으로 정치적 공감대를 갖고 우호적이었던 트위터리안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됐다. 그 원인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의 타임라인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모든 현안에 대해서 팬덤 형식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사에 하나의 방향으로 가지는 못하는 법이다. 개인은 하나의 고유한 사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배는 함께 타고 가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 간에 의견 충돌로 다툴 수 있다. 당연한 현장이다.
그것을 전제로, 수 년간 안정된 전선을 구축하고 있던 중원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내부의 적들에 의해 포위됐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처음의 나의 멘션도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완고해질수록 나도 완고해졌다. 확증편향이란 단어를 들이대며 사고의 경직성이 불러오는 폐단을 설파했다. '사람을 미워하면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미움은 미움을 낳고, 종국에 루비콘 강을 건너 돌아올 수 없게 된다'고 그들을 회유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네거티브가 난무하게 되고 나의 손끝은 점점 날이 세워졌다. 내 의견과 다른 트친의 말을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나는 감정이 격해져 그들을 명부에서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인원이 어림잡아 수백 명이 넘었다. 그들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미움으로 가득 찬 궤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터무니없는 문장을 읽고 논박해야 하는 나는 무엇이며 그것이 정말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때로는 그런 내게 분노가 치밀었다.
사실 어제의 아군과 이렇게 극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현상은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도 그런 것을 느꼈겠지만, 아군까리 싸우면 마음의 상처가 더 크고 따라서 분노의 수치도 높아져 양상은 더울 혼탁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전쟁을 상기하면 공감할 것이다. 적군과 싸우면 최소한 마음은 아프지 않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돼야 한다'는 논리그렇게 선거가 다가올수록 트위터를 여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렇다고 그 횟수만큼 트윗을 올리진 않았다. 하루에 3개 정도는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지켜지는 건 며칠에 한 번 꼴이었다. 트윗을 하지 않더라도 중원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이 나면 수시로 출입했다. 어느 때는 잠 못 이루는 새벽에도 여론이 궁금해 트위터에 들어가곤 했다. 중원은 점점 진흙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 대선 때는 확실한 전선이 구축된 관계로 강력한 트윗을 쏘아대고, 나는 내심 카타르시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기분을 전혀 들지 않았다. 트윗의 내용들을 볼 때 어제의 아군을 향해 화살을 쏜 횟수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정치적 관심은 내부의 적이었다. 전선 밖의 적군은 저 멀리 있었고 바로 지척인 내부의 적과 나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뭔가. 이런 나를 발견하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전의 상처가 더 깊은 법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무렵, 트위터에 팔로워 100만 명을 거느린 '동방불패 천하의 고수'가 등장했다. 한동안 은거하고 있던 그 고수는 네거티브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무렵 '진실'이라는 그만의 마공을 품고 나타나 피바람을 예고했다. 숨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