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니 '발도르프'니 하는 육아 프로그램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흙 파고 풀 뜯고 돌 위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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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모든 영역을 '효율성'과 '성과'로 환원시킨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잘 놀아도 노는 시간 동안 발달에 자극을 받아야 하고 충분히 놀았으니까 공부를 잘할 거라고 기대한다.
엄마가 함께 하는 시간조차 매번 '애착'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아이의 모든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끼워 맞춰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육아는 성과를 기대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된다. 아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주조해야 하고', 어른의 계획과 주도로 이끌지 않으면 '방치'라 여기는 한 육아는 언제나 버거울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 키우기란 때론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며, 목표 없이 떠돌기이고, 어떤 가시적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 안에서 투명한 기쁨을 누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공터에서 놀이를 발명하던 아이들처럼, 세계를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뻘짓의 시간이다.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도와가며 사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다. 생활과 놀이가 뒤섞이고, 여러 사람과 자연스럽게 부딪히며 스스로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공간이다.
부모들에겐 지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하고 승인해줄 동료와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예측 불가능의 시간을 느긋이 음미하는 일이 허락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극을 주지 못할까 봐, 뒤처질까 봐 전전긍긍 하도록 내몰린다.
육아 정보는 기쁨을 알려주기 보다 불안과 걱정을 조장한다. 걸음마를 늦게 한다고, 말이 늦다고, 낯을 가린다고, 한글을 못 읽는다고, 영어를 모른다고 조바심을 내게 된다. 또한 타인들의 도끼눈에 끝없이 자신을 검열한다.
편리한 가전제품, 멋진 인테리어로 꾸민 시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육아가 힘든 이유. 그건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질적인 충분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엄마 탓'만 한다.
그저 응원해 주었으면
조건을 바꾸는 일은 나 하나 참고 견디는 일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아파트 탈출, 도시 탈출이 답이라고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우리 가족은 운이 좋아 도심을 벗어났지만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에게 또 다른 박탈감을 줄까도 염려스럽다. 또 아무리 주변 환경이 호의적이라 해도 과제는 매번 새롭게 몰아친다. 부모로 살아가는 이상, 마음 편한 날은 없다.
단지 이걸 말하고 싶다. 육아는 엄마와 아이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기질, 주 양육자의 성향과 체력 이외에도 주변 환경, 배우자와 가족의 육아 참여, 복지제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오늘 하루의 육아를 만든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슈퍼 엄마'들도 있지만, 보통의 엄마들에겐 힘듦을 감수하고서라도 양육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서 '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못하느냐', '네 아이는 왜 그러냐', '네가 문제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개인이 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같이 개선해보려고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엄마 개인에게 책임과 의무만 부여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엄마들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나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지지고 볶아가며 기쁨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분투하듯 다른 엄마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지적하는 말들은 고이 접어줬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압박하는 세계와 홀로 결투하며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으니, 손을 뻗어 잡아주지 않을 거라면 그저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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