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얼굴'은 왜 가려졌나

[에디터의 편지] #3

등록 2018.11.02 10:12수정 2018.11.30 16:42
1
원고료로 응원
에디터의 편지는 오마이뉴스 에디터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주 1회 띄우는 편지를 이메일로 받길 원하시면 기사 하단 '뉴스레터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편집자말]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CJ 엔터테인먼트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한 순간의 실수로 살인자가 되어버린 남자와 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등을 돌린 순간, 모두에게 얼굴을 들킨 아들 서원은 이때부터 줄곧 숨바꼭질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머리카락 한 터럭 보이지 않게 숨었다고 믿을 때마다, 운명은 어김없이 그의 뺨을 후려칩니다. 다시 모든 사람들은, 서원에게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립니다.

얼마 전 강서구의 어느 피시방에서 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잔인하다, 처참하다, 비극적이다라는 말들로 수식하기조차 힘든 죽음이었습니다. 때마침 현장 CCTV가 공개돼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습니다.

거대한 분노 앞에서 경찰은 피의자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수많은 카메라 앞에 별다른 가리개 없이 그를 세웠습니다.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가 바뀌고, 무표정한 얼굴 사진이 온라인 곳곳을 떠돌았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김아무개라는 표현을 쓰고, 얼굴 사진을 가렸습니다. 일반 피의자는 흉악범이어도 확정 판결까지는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살인범 인권이 더 중요하냐" "오마이뉴스는 정신 차려라, 역겹다!" "인권팔이 선동 찌라시"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유족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어느 악마'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무엇을 얻을까요? '어느 악마의 가족'들이 돌팔매질에 맞고 태양 아래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었을까요? 이 물음에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때까지, 오마이뉴스는 계속 고민할 것 같습니다.

[기사 읽기] '알 권리'라는 이름의 '보복'에 대하여


* 뉴스레터 구독하기
#에디터의 편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2. 2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3. 3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4. 4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5. 5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