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산골에도 마스크 대란... 우체국에 긴 줄

[코로나19가 바꾼 시골 풍경] 지리산 토지, 마산면의 아침

등록 2020.03.03 12:13수정 2020.03.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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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승

 

ⓒ 김창승


산골 우체국 앞으로 길 줄을 섰습니다. 맨 앞에 서 있는 분에게 물었더니 오전 7시에 아침도 거른 채 나왔다 합니다.


지리산 토지우체국에 배달된 오늘의 마스크 물량은 85세트(425장), 어제보다 5세트 늘어난 공급량입니다. 1인당 5매, 1세트(장당 1천원)로 판매하므로 긴 줄을 선 사람은 오늘도 85명 한정으로 조기 마감될 것입니다.
 

ⓒ 김창승

  

ⓒ 김창승

 
공급된 물량을 알길 없는 시골 이모님들은 지금도 유모차나 자전거에 몸을 의지한 채 우체국 앞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11시에 번호표 배부를 시작으로 서명을 한 뒤 마스크를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마스크 구경을 한 사람은 다행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3~4시간 찬바람속에 서 있다가 빈 손, 허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해야 합니다. 마을 이장단을 통해 연로하고 취약한 가구부터 연차적으로 공급했다면 이런 생고생은 면하고 집단 감염의 우려도 해소됐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지리산 토지, 마산면의 아침 풍경입니다.

폐부를 치르는 맑은 바람을 쐬며 청명한 아침을 맞이하던 지리산 사람들이 마스크를 눈높이까지 쓰고 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합니다. 이 모든 게 자연과 공존하지 못한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지배적인 생활형태에 대한 하나의 경고가 아닐까 싶어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 김창승

 
오늘도 산수유, 매화, 광대나물, 노루귀, 바람꽃은 지천으로 피어날 것인데 우체국 앞에만 긴 줄을 섰고 꽃그늘 아래는 썰렁 하기만 합니다. 지리산 맑은 바람, 짙은 꽃 향기로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잠잠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르신과 이모님들 마스크 나누워 잘 쓰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선에서 방역과 치료에 헌신하시는 의료진과 관계자 어려분 힘 내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을 믿고 의지 합니다.

<지리산 아래 토지, 마산 우체국에서>


#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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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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