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본인이 감염병이 의심될 경우 '참고 일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혹여 검사를 받았다가 확진되었을 때, 평소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 갑작스런 업무 공백으로 인한 동료의 핀잔, 상사의 압박에 따른 고용상 불이익은 물론이요. 결정적으로 노동에서 강제적으로 배제당하는 데 따른 '무급생활' 기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는 산업재해(이하 산재)를 제외하면 건강을 이유로 편히 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산재로 인정되면 의료비에 평균임금의 70%까지 휴업급여로 보장받을 수 있지만, 산재가 아닌 모든 질병이나 부상에 따른 의료비, 소득 손실에 의한 부담은 오로지 본인이 떠안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흔히 시행하는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 상병수당이란 산재 아닌 건강 문제로 인한 소득 손실을 사회보장의 형태로 보전해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노동자에게는 '아프면 끝장'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소득 상실에 대한 보장이 미흡하다. 심지어 아파서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어도, 재취업 활동을 할 수 없는 건강 상태라면 실업수당마저도 요원해진다.
물론 임금 지급에 있어 '무노동 무임금'은 여전히 중요한 원칙이고 임금의 구성에 '생활 보장적 부분'은 없다고 판단했던 1995년 대법원판결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염병은 다른 질병에 의한 무노동(결근)과 성격이 다르다. 다른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 않은가?
감염병 의심 증상이나 확진자 접촉에 따른 선제적, 예방적 격리, 치료 후 주위 전파방지를 위한 격리기간마저 모두 똑같이 개인 질병에 따른 휴가로 여겨 개인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근로기준법의 목적에 맞는 것일까?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병가'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면 쉬게 하는 직장 문화'를 넘어
감염병 유행을 초기에 막으려면 '아프면 쉬게 하는 직장 문화'를 넘어 '아플지도 모를 때도 쉬게 하는 직장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는 꼭 감염병의 경우만이 아니다. 굳이 복지라거나 사회보장의 중요성을 거론하지 않고서도 감염병 아닌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노동자가 빨리 쉴 수 있고 빨리 치료할 수 있는 체계는 노동력 유지나 생산성 손실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에 외신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촘촘했던 방역 대응 이면에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미흡한 소득보장체계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예방법에 신종감염병에 따른 격리 기간 사업주의 유급휴가 협조에 관한 내용을 신설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줄 수 있다' 수준으로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행정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편의상 '연차'를 소진시키거나 '무급휴가' 처리될 개연성이 높다. 상병수당 등의 형태로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게 하거나 일정 수준의 급여 지급을 의무화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날이 갈수록 세계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코로나19와 같은 신종전염병이 더 빈번해질 것이다. '감염병 관리체계' 강화에 진정 관심이 있다면, 또한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 방역이 답이라 생각한다면 노동자의 소득 보장 체계부터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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