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서울 광진을 당선자
이희훈
- 광진을에서 힘겨운 싸움 끝에 거물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었다(고민정 5만 4210표(50.37%) - 오세훈 5만 1464표(47.82%)). 승리 요인은.
"팀워크가 좋았다. 그래서 더 기쁘고 뿌듯하더라. 달리기 시합을 해도 나 혼자 잘해서 1등 한 것보다 팀이 다 같이 잘해서 1등 하면 기쁨을 나눌 사람도 더 많아지고 성취감도 커지지 않나. 전국의 당원들과 지지자들께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신 덕에 이길 수 있었다."
- 공식 선거운동 기간 첫날이던 4월 2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유력 인사들이 총출동하며 광진을에 화력을 집중했다.(관련 기사 : 선거운동 첫날 임종석·양정철이 '광진을' 고민정 찾은 이유).
"내가 직접 와달라고 요청 드렸다. 그만큼 힘든 싸움이었다. 당시 발표되던 언론 여론조사 중엔 우리가 많이 앞서는 결과도 있었지만, 실제 캠프에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박빙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유세 지원 요청을 할 때도 여론조사만 보고 광진을은 별로 안 힘든 곳 아니냐고 해서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임 전 실장과 양 전 원장은 모두 지체 없이 바로 와주셨다. 참 고마웠다."
- 임 전 실장과 양 전 원장에게 유세 지원을 요청한 이유가 있나.
"힘들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부르게 되는 법 아니겠나. 두 선배는 모두 저와 '동지적 관계'랄까, 그런 사이다. 임 전 실장은 청와대에서 처음 국정을 경험할 때 청와대 비서실장이었고, 양 전 원장은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내가 문재인 캠프 영입 1호로 들어오게 됐을 때 처음 만나서 제안을 주신 분이다. 두 분 다 내가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에서 만났고, 힘든 시기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단 내가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현명하고 지혜로운 질문을 던지는 선배들이었다. 선거 끝나고 연락했더니 오히려 선배들이 고맙다고 하더라. 방송인으로 만난 고민정이 청와대를 거치고 오세훈 전 시장과 붙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고맙다고."
- 민주당 내에선 '고민정이 오세훈에게 지면 청와대가 심판 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그래서 더 절박했다. 내가 만약 여기서 진다면 나 하나 지는 게 아니라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거움과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당선됐을 때 가족들과 함께 유독 청와대 식구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청와대를 떠날 때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생각뿐이었다."
고 당선자는 지난 2004년부터 2017년 1월까지 KBS 아나운서로 일하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영입됐다. 이후 2017년 6월부터 청와대 부대변인, 2019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청와대 대변인으로 일했다.
- 4.15 총선 두 달 전인 지난 2월에야 출마 선언을 했을 만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국회의원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있나.
"정치를 안 하겠다고 버텼던 건 정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격상 휩쓸려 가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고 애초에 정치가 꿈도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됐고, 직업 특성상 많은 시청자들이 내 얼굴을 알고 있기에 내가 잘 살면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좋은 좌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수 정권 9년의 암흑기를 맞았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선배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지만 한계도 느껴야 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알을 쫌)라고, 누군가는 바깥에 나가 알을 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 문재인 후보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캠프를 거쳐 청와대에 들어갔고, 대변인까지 맡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했으니 청와대 안에 남아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알 바깥에서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명분이 더 크게 다가오더라.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고 국민들이 청원을 하고 대통령이 성명을 내도 국회에서 입법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공허한 말 잔치로 끝날 뿐이다. 특히 어린이 교통 안전법 같이 정쟁 거리도 아닌 사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입법 현실이 정말 답답했다. 국회에서 약속해온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결국 무산되는 걸 보면서도 허무했다. 청와대에서 나가 싸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명분이 섰던 만큼, 쉬운 지역구가 아닌 어려운 곳에 배치해 달라고 당에 요청했다."
"2차 북미회담 결렬 때 가장 힘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