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노동자 두 명이 맥주 상자를 하역하고 있다. 이날 멕시코는 비필수산업 재개를 포함한 순차적 정상화 조치를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아니나 다를까, 광적인 사재기가 시작됐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세계 각 국에서 화장지 사재기가 극심할 때도 남의 나라 일이려니 여기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멕시코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세 배까지 가격이 뛰었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맥주를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몰렸고, 맥주를 사기 위한 긴 줄이 이어졌다. 뉴스에서는 그들 사이에 '건강한 거리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걱정을 쏟아냈다.
4월 하순으로 가면서 기왕 생산되어 주류창고에 보관되다 한참 웃돈을 얹어서라도 거래되던 맥주마저 사라졌다. 술 값은 치솟았고, 대부분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결국 저렴한 가격의 밀주가 등장했다. 웃돈을 얹어 맥주와 술을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밀주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았을 터. 맥주 사재기에서 밀린 사람들에게 그나마 남겨진 선택은 밀주였다.
그리고 4월 하순부터 5월 내내 각 주마다 밀주를 마시고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죽음은 어찌 면하더라도 시력을 잃거나 사지가 마비되거나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는 사례들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가파르게 치솟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그래프와 별도로, 또 다른 그래프가 등장했다. 밀주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는 자들의 수치였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그래프 같이 이 또한 가파른 우상향의 패턴을 면치 못하는 듯했다. 숫자만 다를 뿐,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래프는 정점에 이를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5월 내내 가파른 속도로 우상향했다.
한방울의 밀주로 식물인간 신세
물론,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멕시코에서 밀주는 언제나 존재했다. 적은 돈으로 쉽게 취할 수 있는 술이었다. 통상적으로 농촌 지역에서 적은 돈으로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먹는 술로, 보통 사탕수수로 만드는 96%에 달하는 알코올이었다.
건강에 치명적이긴 하지만, 취하기까지 정상적인 술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개의치 않고 마시던 술이었다. 굳이 술로 마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바로 짜 소독하지 않은 소 젖을 먹을 때, 이른 새벽 힘든 일을 앞에 두고 커피 또는 코코아를 타 마실 때도, 사탕수수 알코올 서너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농촌 지역에서라면 일상의 문화였다.
문제는 공업용 메탄올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해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에탄올은 진즉 금값이 되어 소독제 시장으로 팔려나간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공업용 메탄올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맥주를 사지 못한 사람들 혹은 그간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96도짜리 알코올에 취하던 사람들이 마신 술에 식용 에탄올 대신 공업용 메탄올이 섞이기 시작했다. 각 주에서 사망자들이 속출했고 동시에 밀주 제조업자에 대한 수사 소식이 들려왔지만, 검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사망자는 189명에 이르렀다.
지난 6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 누적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수가 1만 명에 가까울 즈음에 멕시코 정부는 50일간 이어졌던 자택대피령을 해제했다.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가 누그러져서 취해진 조치는 아니다. 여전히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정점에 이르지 못한 채 거세게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배고픔에 몰린 사람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뉴노멀'이라 불리는 정상화로 돌아섰다. 뉴노멀 이후 지난 보름 사이 확진자는 4만 명이 더해졌고 사망자는 7천 명이 더해져, 6월 15일 현재 14만 명의 확진자가 누적되었고 1만7천 명의 사망자가 기록되었다.
뉴노멀의 개시와 함께 시작된 순차적 정상화 조치 중 정부는 가장 먼저 3개 산업 부문의 정상화를 명했다. 그 3개 부문에 맥주를 포함한 주류 산업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코로나 맥주'로 대표되는 모델로 그룹(Grupo Modelo)을 위시하여 모든 주류 산업들이 일제히 공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생산 중단을 만회하듯 '코로나바이러스' 버전의 다양한 맥주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없는 맥주가 나왔고, 바이러스 최전선에서 땀흘리는 의료진들에 대한 감사가 적힌 맥주도 나왔다. 그렇게 멕시코에 다시 맥주가 돌기 시작하면서 밀주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정점을 찍고 제로를 향해 수렴했다.
마약도 만들고 밀주도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