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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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후 나는 다시 한번 라면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부탁 좀 하나 들어줄래요?"
적십자 회원인 동네 지인의 전화였다. 적십자에서 어버이날에 면별로 취약계층에게 가져다 줄 라면이 나왔다고 했다. 비혼을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 가끔씩 적십자에서 나오는 구호품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친구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져다주면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산다는 부담이 덜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버이날에 가장 외로운 친구에게 라면이라도 가져다주고 싶다는 친구의 부탁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비혼의 그는 물론 나도 아는 사이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다가 환속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치매를 앓는 모친은 때론 행동이 괴팍해졌다. 끼니 때마다 아들이 해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고 밥상을 밀어내고 고성을 지르곤 했다.
살아온 생의 대부분을 잊었지만 장가도 가지 않고 수행자도 되지 못한 아들에 대한 회한만은 잊지 않은 것일까. 모친은 비혼으로 환갑이 넘은 아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사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내가 찾아갔던 날도 모자의 말다툼이 한창이라 듣고 있기가 민망한 상황이었다.
"엄마, 딸이 왔네. 라면도 사가지고 왔어."
그가 나한테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졸지에 그 집 딸이 되어 버렸다.
"이게 워쩐 일이다냐? 서울서 내려올라믄 먼디 밥은 먹고 온겨?"
앉은 걸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미는 노모의 손을 잡아주었다.
"얘야, 라멘이라도 끼리라. 먹고 가게..."
딸(?)의 등장으로 모자의 말다툼은 일단락이 되었고 조촐한 라면 밥상이 차려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집의 딸이 되어 라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어야 했다. 노모의 따스한 눈길과 아들의 애처롭고 미안해 하는 눈빛을 받으며 라면 한 그릇을 비웠다.
노인 장기 요양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결혼도 하지 못하고 수행자도 되지 못한 그는 어머니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직접 모시고 싶어서 자처한 일이라고 했다.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 가족과도 잘 먹지 않는 라면을, 이런 사연을 가진 가족들과 먹었다. 얼떨결에 그들의 일회용 가족이 되어서 함께 먹는 라면 밥상을 받았다.
라면은 로맨틱한 사랑 고백용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에게 정서적인 허기를 채워주는 한 끼가 되기도 한다.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라면의 세계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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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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