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돌아가신 부모 지방(한자) 해설
김슬옹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지방을 짜임새를 풀어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맨 위 '顯(현)'은 드러낸다는 뜻으로 의역을 하면 조상님의 훌륭함 또는 자랑스러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남녀를 구별하여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考(고)'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키는 '妣(비)', 그다음은 아버지 쪽은 관직명을, 어머니 쪽은 관직의 부인임을 나타낸다.
조선 시대 때 대부분은 벼슬을 하지 못했으므로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한 조상을 뜻하는 '學生(학생)'을 쓴다. 평생 배운다는 겸허함이 담겨 있다고 하지만 과거로 벼슬에 나가지 못한 조상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실제 대부분이 평생 공부를 해야 했다. 보통 7, 8살 때부터 한자와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서른이 넘어서야 극소수만이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으니 대부분이 과거 낭인으로 평생을 지내야 했다.
정구선의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팬덤북스) 등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조선 시대 통틀어 과거 급제자 수가 1만5000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지방에 관직명을 쓸 수 있는 조상이 극소수였다. 그것은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님을 뜻하기도 했다.
'유인(孺人)'은 벼슬하지 못한 남자의 부인이라는 뜻이지만, 김병조 유튜브 강의에서는 가장 낮은 벼슬인 참봉 부인 정도로 격을 높여 벼슬을 할 수 없었던 여성을 오히려 높이는 뜻이 있다고 한다. 송명호 한학자는 중국 고전 <예기(禮記)>를 근거로 '원래 대부의 배우자에게 쓰던 말인데 한국에서만 벼슬하지 아니한 남편의 부인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평생 학교에 갈 수 없고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고 한문을 배워서도 안 되었던 남존여비의 그늘이 배어 있는 말이다.
'府君(부군)'은 죽은 남성에 대한 존칭이고, 이에 대응되는 여성 쪽은 본과 성을 높여 써 준다. 김병조님은 이 또한 남편 성을 따르는 서양에 비해 여성의 뿌리를 존중해 주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남편 쪽과 구별하는 맥락일 뿐이다.
온 가족이 함께 조상을 기릴 수 있는 우리말 지방
제례 문화가 보수성을 띠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에다가 대한민국 공용문자이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이 아닌 한자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이치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15세기에 죽어서까지 왜 중국 음악으로 제례를 지내느냐고 탄식했는데 21세기에도 이런 탄식을 이어가는 실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 제례 문화의 문자 보수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나치다. 지금도 대다수 무덤 비석은 한문이나 한자를 섞어 세운다. 몇 년 전 평소 국어 사랑을 위해 평생을 사신 국어 선생님 출신의 고인의 비석을 '○○○之墓'라고 중국식 한문을 써 놓을 정도였고, 한글 사랑이 남달랐던, 고 김재원 국립한글박물관 관장 영결식도 한글박물관에서 거행되었음에도 한자가 뒤범벅이었을 정도이다.
이런 문제를 일찍부터 인식해 1992년 무렵 민중 유교 연합 서정기님 주장대로 한말글 사랑 한밭 모임에서 한글 지방 쓰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 적이 있으나 30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게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