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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 잠든 기괴함을 바로잡으라

[2022대선 정책오픈마켓]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사바로세우기 필요

등록 2021.12.29 20:28수정 2021.12.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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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두 달여에 걸쳐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말]
 2017년 5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2017년 5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새 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지난 5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반성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역사학도로서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역사바로세우기'였다. 이는 친일 및 군사독재로 얼룩진 과거사를 청산하고 우리의 법통(法統)을 바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바로세우기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문재인표 역사바로세우기를 평가해보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취임 직후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은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발포명령자 규명을 비롯한 5·18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고, 이는 2018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선언했던 것처럼 이제야 비로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민족사의 정통을 바로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건국절 논란으로 폄훼되고 홀대받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바로 세우고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을 뿐만 아니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여 지금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지난 8월에는 봉오동 전투·청산리 전역(戰役)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귀환을 계기로 장군의 훈격을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상향 추서 했다. 이는 우리 독립운동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는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표류하고 있는 '친일파 파묘법'
 
 친일파 신태영, 이응준 등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내려다 본 독립운동가 묘역. 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기괴한 형국이다.
친일파 신태영, 이응준 등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내려다 본 독립운동가 묘역. 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기괴한 형국이다.김경준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쉬움도 적지 않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는 보수 진영의 반발이 심한 사안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친일파 파묘법'을 들 수 있다.

김백일·신응균·신태영·이응준·이종찬·백낙준·김홍준·신현준·김석범·송석하·백홍석·백선엽.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이들은 현재 모두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 당시 광복회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185명인 73.1%가 '현충원 내 친일파 묘 이장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85.3%에 해당하는 140명이 찬성했다. 


그러나 막상 총선이 끝나고 나니 180석을 가진 '거대 여당'은 친일파 파묘법 처리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친일파 파묘법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는 광복회 등의 요구에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내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많다"며 거부하기까지 했다.

친일파 파묘법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동안 2020년 7월 '마지막 간도특설대원' 백선엽이 국가가 베푸는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동안 친일파 파묘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조상들이 친일반민족행위를 통해 불린 재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거는 후손들이나,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좌익은 이른바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 공로자들을 친일파로 격하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을 흠결 많은 나라로 만들려 한다"라며 망언을 쏟아내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친일 청산을 확실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 없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숙제를 문재인 정부는 결국 외면했다.

화상산 묘지에 잠든 독립운동가들의 비극
 
 2020년 1월 촬영한 중국 충칭의 화상산 묘지 모습
2020년 1월 촬영한 중국 충칭의 화상산 묘지 모습김경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홍범도 장군이 사후 78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귀환했다.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에 모셔진 장군의 유해가 하늘을 날아 귀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도 큰 위로가 된 이벤트였다.

그러나 장군의 귀환을 보면서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 충칭(重慶) 화상산(和尙山)에 묻힌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다.

화상산 묘지는 충칭에 거주하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 감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이 잠든 공동묘지다. 해방 후 환국한 김구 주석은 화상산 묘역 내 한인 유해의 국내 봉환을 추진하였으나 일부 유해만 돌아왔다. 그래서 화상산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현지답사 당시 화상산 묘지는 재개발로 인해 지형이 많이 바뀌고 산 중턱으로 도로가 나는 등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역시 굴삭기가 오가는 공사장으로 변해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출신이었던 나는 답사 결과 '파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귀국 후 화상산 발굴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함께 국방부·국가보훈처 등 유관 부처에도 민원을 넣었다. 또 <오마이뉴스>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까지 띄웠다. 그러나 보훈처는 "관련 증거를 찾아서 제시하라"는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공개서한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현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일의 순서로 본다면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묘역이 잘 관리되고 있던 홍범도 장군보다 더 먼저 챙겼어야 할 문제였다. 말로만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강조하고 기념관을 지으면 뭐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데 말이다.

역대 정부는 모두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안 의사를 비롯해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는 일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소홀히 해서는 안될 문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화상산 유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안중근과 홍범도처럼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게 온당한가 묻고 싶다. 화상산에 잠든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언제쯤 그리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친일파 파묘와 독립운동가 유해봉환

최근에 있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다.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반란 수괴 중 한 사람이었다. 박근혜는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는 노태우 국가장, 박근혜 사면의 명분으로 '국민화합'을 내세웠다. 그러나 쿠데타 수괴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 것은 정부 출범 직후 5·18 진상규명을 부르짖던 모습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였다.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린 국정농단의 주범을 대통령이 자의로 사면하는 것 역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에 대한 기만이자 배신행위다.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은 죗값을 다 치르지 않아도 사면될 수 있다는 나쁜 전례를 만들었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반역사적인 결정은 그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문재인 정부 최대의 과오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 정부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 대선 후보 그 누구도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인 친일파 파묘 문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대선 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사바로세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에서 열거한 친일파 파묘와 독립운동가 유해봉환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일러주는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정부에서 우선 실천해야 할 과제로 삼아주길 기대한다.
#문재인 #역사바로세우기 #과거사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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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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