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촬영한 중국 충칭의 화상산 묘지 모습
김경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홍범도 장군이 사후 78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귀환했다.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에 모셔진 장군의 유해가 하늘을 날아 귀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도 큰 위로가 된 이벤트였다.
그러나 장군의 귀환을 보면서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 충칭(重慶) 화상산(和尙山)에 묻힌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다.
화상산 묘지는 충칭에 거주하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 감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이 잠든 공동묘지다. 해방 후 환국한 김구 주석은 화상산 묘역 내 한인 유해의 국내 봉환을 추진하였으나 일부 유해만 돌아왔다. 그래서 화상산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현지답사 당시 화상산 묘지는 재개발로 인해 지형이 많이 바뀌고 산 중턱으로 도로가 나는 등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역시 굴삭기가 오가는 공사장으로 변해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출신이었던 나는 답사 결과 '파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귀국 후 화상산 발굴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함께 국방부·국가보훈처 등 유관 부처에도 민원을 넣었다. 또 <오마이뉴스>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까지 띄웠다. 그러나 보훈처는 "관련 증거를 찾아서 제시하라"는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공개서한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현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일의 순서로 본다면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묘역이 잘 관리되고 있던 홍범도 장군보다 더 먼저 챙겼어야 할 문제였다. 말로만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강조하고 기념관을 지으면 뭐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데 말이다.
역대 정부는 모두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안 의사를 비롯해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는 일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소홀히 해서는 안될 문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화상산 유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안중근과 홍범도처럼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게 온당한가 묻고 싶다. 화상산에 잠든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언제쯤 그리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친일파 파묘와 독립운동가 유해봉환
최근에 있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다.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반란 수괴 중 한 사람이었다. 박근혜는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는 노태우 국가장, 박근혜 사면의 명분으로 '국민화합'을 내세웠다. 그러나 쿠데타 수괴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 것은 정부 출범 직후 5·18 진상규명을 부르짖던 모습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였다.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린 국정농단의 주범을 대통령이 자의로 사면하는 것 역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에 대한 기만이자 배신행위다.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은 죗값을 다 치르지 않아도 사면될 수 있다는 나쁜 전례를 만들었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반역사적인 결정은 그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문재인 정부 최대의 과오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 정부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 대선 후보 그 누구도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인 친일파 파묘 문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대선 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사바로세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에서 열거한 친일파 파묘와 독립운동가 유해봉환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일러주는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정부에서 우선 실천해야 할 과제로 삼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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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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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 잠든 기괴함을 바로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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