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전희영 제공
- 지난 7월 29일 학제 개편안 발표 후 논란이 일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확정된 것이 아니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는데 현재 상황 어떻게 보세요?
"일단 정부가 발표한 후 국민들의 반발이 무척 거세잖아요. 그러니 처음에는 4년간 나누어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12년간 나누어서 하겠다', '연말에 국민적 합의를 하겠다',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해서 하겠다'로 계속 말을 바꾸는 교육부장관이라서 신뢰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어요.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서 국민적 공론을 거치기 위해서 국민 2만 명에게 의사 물어보겠다고 했는데 어제(3일) 강득구 민주당 의원실에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13만1천여 명의 국민들이 설문에 참여해서 98%가 만 5세 입학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잖아요. 국민의 뜻이 이미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된 단계라고 봅니다."
- 왜 이 정책을 갑자기 가지고 나왔을까요?
"다들 그걸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일각에는 교육부장관이 후보 시절부터 여러 가지 의혹에 쌓여 있는데, 이 의혹을 이런 폭탄급 정책으로 덮으려고 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이게 폭탄급 정책이라는 인지를 못했다는 의견도 있어요. 왜냐하면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했던 자료에도 두 줄밖에 없었거든요. 재정 절감 효과나 아니면 빨리 졸업시켜서 빨리 노동 인력을 더 확보하겠다거나. 나름의 구상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정책에 대해 충분하게 인지를 못하고 발표했다고 생각합니다."
- 처음 나온 게 아니고 여러 정부에서 검토했다가 결국 추진하지 않은 정책이에요.
"맞아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이 정책을 검토했는데 전체적인 학제 개편 논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회했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현재 초·중등교육법에 의해서도 1년 일찍 입학하거나 1년 늦게 입학하는 게 가능하도록 되어 있단 말이에요. 처음 법이 개정되었을 때는 한 9천여 명 정도의 조기 입학생이 있었는데 작년에는 500여 명밖에 입학하지 않았어요. 그만큼이나 언니·형과 같이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학부모들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보통 이 정도의 정책이라면 의견수렴부터 해야 하지 않나요?
"그렇죠. 특히 학제 개편 문제는 대한민국 교육 전체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나가야 해요. 이번에는 이것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죠.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기 전에 국회 교육위원회와 항상 사전 협의를 해왔잖아요. 그 절차도 생략되었고, 이 정책을 시행할 사람들이 시도 교육감들인데 이들도 언론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국민 모두가 국가로부터 이 한여름에 뜨거운 폭탄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법을 개정해야 할 사안은 아닌가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재 초·중등교육법 13조에 따라 1년 일찍 입학하는 게 가능하게 되어 있잖아요. 이 법에 근거해서 특별하게 법 개정 없이 교육부에서 추진할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 취학연령을 낮췄을 때 우려되는 건 뭔가요?
"우려되는 것이 너무나 많죠. 우선 만 5세 입학은 많은 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이들 발달 단계에 맞지 않아요. 만 5세의 아이들은 충분히 놀고 체험 활동이 필요한 단계인데 학교 책상에 40분씩 앉아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폭력이에요.
그리고 현재 초등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은 혹시 아이가 글자를 몰라서 학교에서 힘들까봐 사교육을 많이 시켜요. 사교육 연령이 한 살 더 내려가는 거죠. 또 정부에서 내놓은 것처럼 15개월만큼씩 잘라서 입학하게 되면 지금도 과밀 상태인 교실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해야 하는 최악의 교육 환경 속으로 아이들이 내몰리게 됩니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그대로 중·고교를 같이 다니고 대입과 취업에서도 경쟁하게 되겠죠. 그러면 피해는 결국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이어지게 되는 거겠죠."
- 박 장관은 학생 수가 줄어서 15개월로 해도 과밀학급은 되지 않을 거라고 해요.
"정부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만큼 선생님들의 수도 줄이고 그만큼 교육 재정도 줄이면서 학령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교육 여건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수도 줄어들고 재정 지원도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교육 여건이 그다지 크게 나아지지 않아요. 정부에서 15개월씩 잘라서 많이 입학해도 여건상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도 한 학급에 20명 넘는 곳이 전체의 78%나 되거든요. 경기도에는 25명 이상이 되는 학급의 중학교가 95%가 넘어요. 지금 엄청나게 과밀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거죠."
- 박 장관은 취학 연령 인하가 세계적 흐름이라던데, 맞나요?
"아니요. 오히려 OECD 나라들은 입학 연령을 더 늦춰야 된다고 이야기해요. 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노는 시기를 훨씬 더 충분히 보장해 주는 것이 성장 발달과 창의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 박 장관은 조금이라도 일찍 공교육 체계로 들어오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말해요.
"현재도 대한민국에서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이거든요. 그럼 여태까지 이루어졌던 유아교육이 공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고요. 교육부장관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더 많은 아이를 공교육으로 품고 싶다고 하면 만 5세들을 초등학교로 입학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무상의무교육에 대한 사회적 협의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하는 게 오히려 적절한 방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밤 8시까지 돌봄'도 당장 불가능한 얘기... 교육 모르는 교육부장관 사퇴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