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1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
김보성
윤 대통령의 '노무현 팬심'은 유명하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SBS <집사부일체>에서 가수 이승철씨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르며 "노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말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찾았을 때는 노 대통령을 언급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또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한 통화에서 "(남편이) 노무현 영화를 보고 혼자 2시간 동안 울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 앞에서도 19년 전 같은 일을 겪었던 노 대통령을 호출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시멘트분야를 대상으로 처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불법 파업의 악순환을 끊어 국민들의 부담을 막고자" 한다고 밝혔다. 2003년 5월 6일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방적인 불법 집단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온 노 대통령과 닮은 기조다. 여권은 '업무개시명령은 노무현이 만들었다'는 논리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노무현이 만든 업무개시명령'의 모순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대통령 스스로 2003년 6월 2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초청해 점심식사를 하며 "화물연대는 여러 번 파업하겠다고 했는데 정부는 대화 창구를 열지 않았다. 대화 창구가 없어서 열라고 했다"고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동계와 갈등이 이어지자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운송 거부에 따른 혼란을 막겠다며 '업무개시명령(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을 도입했다.
2003년 12월 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서상섭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 제도가 "부당하게 강제 근로를 강요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화물연대 집단활동이 아무리 미워서 나라의 물류수송이 마비되었다고 한들 건설교통부가 나서서 전가의 보도 같은 업무개시명령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노동3권 보장이 부정되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조그만 생존권적 파업까지 불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업무개시명령의 개념 자체에도 허점이 있다. 화물노동자는 법률상 노동자가 아니다. 정부 역시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파업'이 아닌 '집단운송 거부'란 표현을 쓴다. 그러면 노동자가 아닌 이들에게 정부가 강제로 '일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업무개시명령은 출발부터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화물연대를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로 본다는 전제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살피겠다는 것 또한 앞뒤가 안 맞는다.
서상섭 의원이 지적한 위헌성 문제 역시 그대로다.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만 제한받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은 침해받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무엇이 불법파업인지 명확히 짚진 않은 채 연일 '노조 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가 수시로 말하는 "헌법정신"을 존중하긴커녕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에 가깝다.
노림수는 분명하다. 윤 대통령과 여권은 취임 6개월 만에 곤두박질친 지지율을 만회하는 방법은 '노조 혐오'를 자극,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끝낸 모양이다. 1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대선 불복 좌파 연합이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체제 전복의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발언함에 따라 전선은 더욱 선명해졌다. 협치는 필요 없고 진영 대결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기조 역시 뚜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