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식 살해' 언론과 사회가 주범

등록 2000.10.13 10:26수정 2000.10.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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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터너 증후군이란 장애를 가진 자식을 어머니가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일간지에서 이 기사를 사회면에서 다뤘는데, 그 기사의 방향을 놓고 현재 여러 장애관련 사이트 게시판에 반박글이 올라오고 있다.

당시 모든 언론은 아들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고통을 엄마가 대신 떠안은 것이라는 취지로 기사를 다뤘다. 당시 여러 언론의 헤드를 살펴보면 한국일보는 '아들의 고통을 대신 떠안을 겁니다', 중앙일보는 '7살 장애아 숨지게 한 모정', 일간스포츠와 서울경제신문은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 똑같이 '장애아들 고통 보다못해 어머니가 살해후 자수'란 타이틀을 뽑았다.

"장애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한 장애인은 "이 사건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비속살인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아이의 고통을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 비통한 모정'이란 표현으로 미화했고 기사를 접한 국민들은 살인자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비통해 한다.

이에 한 네티즌은 "우리들은 진범과 짜가를 오해하고 있다"며 "그 아이를 죽이게 만든 우리들 사회가 진범"이고, "한국사회라는 이름의 범인은 그 어머니의 손을 통해 증거도 없는 완벽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진범이라는 얘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들 중에서 선천적인 원인이거나 원인 미상의 장애를 가진 이는 약 10% 밖에 안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약 90%의 장애인이 질병, 사고, 공해 등의 후천적인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고 이는 개인적인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고통의 삶을 지워준 당사자인 사회는 장애인들이 존엄성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 줄 막중한 책임이 있다."

또한 "장애를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 살아온 삼십년이 힘겹고 지치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한 장애인에게도 우리 사회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대상처럼 보였다.


"우리는 안티디스에이블리즘(anti-disablism) 사회에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부모 조차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갖고 있는 장애조차도 수용 아니 용납되지 않을 만큼 장애가 그저 부정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지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을 슬프게 하고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사회의 안티디스에이블리즘과 그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언론은 '어머니에 의한 장애인 자식 살해사건'의 공범이라는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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