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의 신작, 'PSYCHE PEPPER'S LOVELY HOT CLUB BAND'

[ROCK! 樂!] 그들의 여덟 번째 도전에 감탄하다

등록 2001.11.02 18:00수정 2001.11.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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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딥 퍼플, 블랙 새버스, 레인보우, 화이트 스네이크의 밴드 변천사와 멤버 이동 경로를 그리다가 어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U2나 레드 제플린처럼 멤버 변경 없이 오래도록 데뷔 시절의 모습 그대로 활동하는 밴드도 많지만, 다수의 팀이 멤버들 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나 불화 때문에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그 중 대표적인 예로는 단연 시나위가 꼽힌다. 임재범, 김종서, 강기영, 김민기, 김성현, 김영진, 서태지, 손성훈, 정한종, 김바다 등이 거쳐간 시나위는 복잡한 멤버 변동과 활동 중지를 경험했다. 그 시나위가 최근 8집 음반 'PSYCHE PEPPER'S LOVELY HOT CLUB BAND'를 내놓았다.


86년에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메틀 앨범을 낸 시나위가, 80년대 산(産) 메틀 밴드 가운데 최초로 9집을 출시한 블랙 신드롬에 이어, 8집을 선사한 것 그 자체가 큰 의의다. 더구나 이번 시나위의 8집은 그들이 지난 세월동안 새겨왔던 흔적들 모두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94년의 활동 재개 이후 시나위를 괴롭혀 온 것은 '변절'의 혐의였다. 맹렬한 헤비메틀에서 얼터너티브-그런지로 노선을 수정한 듯한, 그들의 5집 이후 음반들은 논란이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그것은 시나위의 모든 음반들이 '동질이형(同質異形)'의 법칙 아래 묶여있음을 간파하지 못한 매니아들의 책임일 것이다. 창간 후 줄곧 자리를 지켜 온,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얼터너티브를 선택한 것은 락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긴 했지만, 시나위는 1집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정통 하드 락'에 천착해왔던 것이다.

이번 8집 역시 '정통 하드 락'의 자장(磁場)안에 있다. 1집에서 4집까지 시도했던 헤비한 정서와 5, 6집의 얼터너티브 사운드, 7집에서 면모를 드러낸 사이키델릭한 단면들이 정연하고도 힘 있게 버무러져 있는 음반이다. 현재 '턱식 스마일'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안회태는 "시나위의 요즘 음악이 80년대의 작품보다 재미가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회태의 언급은 단지 헤비메틀 팬의 아쉬움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지 시나위의 진보를 위한 조언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이다. 80년대의 헤비메틀이건 활동 재개 이후의 얼터너티브 사운드건 시나위의 행보는 항상 일관된 여정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판단이 옳다고 본다. 시나위는 장르를 본질에 등치시키지 않았고, 그래서 다소 위험해 보이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점에서 '정신의 좌착'은 주목할 만하다. "비리의 역마속에 빠져 자유를 팔고/ 착각속의 이론을 만들어 나를 가둬버린"이라는 가사는 얼핏 곡으로 소화하기에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거칠고도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와 여유와 무게를 갖춘 보컬은 아우라를 생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헤비메틀의 몇몇 음악에서 감지되는 과시적 연주나 얼터너티브의 몇몇 음악에서 발견되는 지나친 심플함은 찾아볼 수 없다(헤비메틀이니 얼터너티브니 하는 장르가 나쁘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결국은 곡을 만드는 사람의 문제다).


'두 돼지' 역시 부패한 기성가치를 욕하는 강한 곡이다. 시나위라는 팀이 RATM처럼 어떠한 이념 지향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5집 이래로 가사를 통해 반영한 사회의 부패에 대한 관심은 눈 여겨볼 만하다.

역시 타락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PC 폭력'은 5집의 사운드와 당시 보컬이었던 손성훈을 떠올리게 한다. 감상자들은 아마도 옛 추억을 되돌리거나 혹은 반대로 매너리즘이라고 지적하거나 하게 될 것이다.


발라드 넘버들이 심상찮다. 흔히 한국의 '락 발라드'는 전형적인 가요 멜로디(혹은 일본색 곡조)에 다소 강하다 싶은 사운드를 섞거나(가령 김정민, 포지션이나 김경호와 야다 등), 아니면 락의 본질을 되도록 유지하되 한국적 분위기와의 친화성을 유도하는 쪽(강산에의 <라구요>, 부활의 <사랑할수록> 등)의 두가지 방향이 있었는데 본작의 발라드 곡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강한 작품보다 더 '사이키델릭' 노선에 부합하며 독창성을 자랑한다.

타이틀 곡으로 알려진 '나는 웃지'는 난해하면서도 여운을 짙게 남기는 그것의 뮤직 비디오와 닮았다. 또 '나는 웃지'를 사이에 두고 사랑노래인 'E U'는 더 대중적인 편에, '파란 밤'은 한층 더 몽롱한 편에 서 있다. 신대철이 인도여행을 회상하며 직접 인도 악기인 시타를 연주하고 또 노래까지 부른 '해가 진다'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아쉬운 점은 여러 가지 감상 포인트에도 아랑곳 없이 새로운 보컬리스트인 김용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 곳곳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이다. 그는 역대 시나위의 노래꾼들처럼 개성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논란에 휩싸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어떤 이들은 고음의 부재를 탓하지만, 나는 중음의 강력한 현존을 주시한다. '금지된 노래'의 경우 스트링 편곡과 아름다운 가사로 이루어진 걸작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김용의 매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시나위의 힘은 안주하지 않는 자세에 있다. 바야흐로 여덟 번째를 맞이한 그들의 모험이 '좌착'(사전에 없는 단어지만 <정신의 좌착>의 '좌착'은 아마도 '좌절하는 자의 착지'가 아닐까)이 아니라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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