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엄마의 '홀로서기' 연습

등록 2001.12.13 23:21수정 2001.12.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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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네살배기 아들과 여섯 살 된 딸아이가 난생 처음 엄마와 떨어져 오후 내내 낯선 사람과 하루를 보냈다. 대부분의 날들을 아이들과 집에만 머물던 내가 세 달간의 강의를 거친 다음 후속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비 시터'를 부른 것이다. 그 동안 근처에 사는 이모 집이나 또래가 있는 이웃집에 맡긴 적은 있으나 생면부지의 사람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나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럴 때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아직 아이들 홀로 집에 머물 수 없는 상황에서 부득이 방문탁아(베이비 시터)를 선택한 것이다. 연 회비 10만 원에 하루 몇 만원. 여유 있게 한나절 볼일을 보기 위해 지불할 돈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더 이상 아이들에게 매여 집에 붙어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 나름대로는 어렵고 힘든 결정을 내렸다.

어언 6년에서 4년을 내 그림자인 양 붙어지낸 녀석들에게도 엄마, 아빠 없는 시간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딸애는 아기 때부터 내가 볼일(?) 보는 시간마저도 불안해하며 화장실 문 앞을 떠나지 못했을 정도니까. 하루종일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며 지냈던 둘째도 누나만큼은 아니지만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거의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전날 큰 아이에게 "너 유치원 간 사이 선생님이 오셔서 엄마 대신 숙제도 봐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놀아주실 거야"하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땐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녀석이 오늘 아침 일어나서는 어제 한 약속 생각이 나는지 울먹울먹거리며, "엄마, 나 친구 집에 가 있으면 안돼?"하며 걱정과 두려움이 깃든 눈빛으로 물었다.

"넌 왜 그러니? 어제 엄마가 이야기했잖아? 선생님이 오신다구"하고 나도 모르게 짜증이 섞여지고 말았다. 그새 딸애 눈엔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고. "그럼 엄마가 편하게 못 나갔다 오잖아? 그러지 말고 선생님이랑 동생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재차 다짐을 했지만 왠지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외출 시간이 다 되어 베이비 시터가 집에 왔다. 내 나이 또래의 아줌마인 듯했다. 집을 못 찾아 좀 늦었다며 미안해하곤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그 사이 둘째 녀석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인사도 하지 않고 안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고 나오지 않았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며 태권도 가고오는 시간, 숙제 봐 줄 것 등을 설명해주고 문을 나서며 "안녕, 엄마 갔다올게" 하는 말에 둘째 녀석 표정이 괜찮아 안심이 됐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이모(?)'가 엄마 보여주라고 했다며 간식 먹은 시간, 놀이 내용을 적어 놓은 쪽지를 내놓았다. 시터 교육을 받은 내용을 충실히 이행한 것 같아 느낌이 괜찮았다. 없는 반찬에 이른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간 모양이다.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하고 돌아서니, 주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딸애 식판 도시락도 설거지가 되어 있었다. 숙제한 것, 놀이하고 그림 그린 것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아이들도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꽤 괜찮아 하는 눈치다.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참 여러 가지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저희들끼리 밥 먹고, 학원 가고, 놀게 하는 부모가 있는 반면 뭐 하나 빠질세라 엄마의 손을 거치게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도 있다.


난 아직까지는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엔 아직 자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며 여성으로서의 사회 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은 '아줌마'로 살다 보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두 녀석 다 아직 어려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지만 또한 아이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만끽하는 손톱만큼의 자유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홀로서기'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부모의 안락한 그늘에서 살아온 어린 시절. 육아와 집안 일에만 매달렸던 10년 가까운 결혼생활. 나는 스스로를 가두었던 34년의 삶을 박차고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홀로서기'가 필요한 사람은 정작 나였음을 깨닫는 시간이 된 것을 고백하는 글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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