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면제 받으시겠습니까"

[팔레스타인 통신] 이스라엘에서 맞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등록 2003.05.16 12:29수정 2003.05.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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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목),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병역 거부자의 날'을 맞았다. 그곳에서 세계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한 은국씨가 보내온 현지 소식 세 번째.

이스라엘에서 맞이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지난 14일(목) 이스라엘에 머물러 있는 세계의 병역거부자들은 6일 동안 진행된‘세계 병역거부자 현황과 팔레스타인 평화 활동에 관한 세미나’와 ‘비폭력 직접 행동훈련’을 마쳤다. 그리고 15일(목)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행사를 벌이며, 이스라엘 수도 텔 아비브를 하루 종일 휘젓고 다녔다.

행사 준비는 13일(화)부터 시작했다. 병역거부자들에게서 퍼포먼스, 나체 시위, 도로 점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논의 끝에 이스라엘의 군사주의를 풍자하는 퍼포먼스와 국방부 앞차도 점거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퍼포먼스의 끝에서 군복을 벗어던지며 병역거부자가 됨을 호소하는 세계의 병역거부자들(텔 아비브에서)
퍼포먼스의 끝에서 군복을 벗어던지며 병역거부자가 됨을 호소하는 세계의 병역거부자들(텔 아비브에서)은국
14일 밤, 이스라엘 변호사를 초청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문을 구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몇 달 전부터 국제 평화 운동가들을 추방하기 시작한 것이 우려가 됐다. 나를 비롯한 몇몇 평화 활동가들은 16일(금)부터 베들레햄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들어가기로 예정돼있다. 때문에 추방은 피해야만 했다. 한번 추방되면 10년 동안 이스라엘 땅을 밟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장기적인 평화운동을 고려해야 했다. 결국 차도 점거계획은 취소됐다.

드디어 15일, 퍼포먼스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텔 아비브 시내 곳곳과 이스라엘 국방부 앞에서 진행됐다. 커다란 군사 국가인 이스라엘을 풍자하기 위해 병역거부자 모두가 군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연극을 펼쳤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군복을 입히는 장면도 있었다. 퍼포먼스의 끝에 병역거부자들 모두, 입고 있던 군복을 벗어 던졌다. 군사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 모두가 병역거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팔레스타인으로


군대 문제에 상당히 민감한 이스라엘 시민들은 퍼포먼스 주변을 지나가면서 병역거부자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심지어 우리의 깃발을 빼앗으려고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끝없는 공포와 무장이 반복되는 나라.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듯한 이스라엘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소박한 퍼포먼스도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가는 곳곳마다 M16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과 말싸움을 벌여야한 했다. 욕설을 퍼붓는 시민들 중에 누가 권총을 들이밀지 도 알 수 없는 분위기였다.

스페인 병역 거부자 나초와 함께 '부러진 총' 깃발을 든 병역거부자 은국
스페인 병역 거부자 나초와 함께 '부러진 총' 깃발을 든 병역거부자 은국은국
병역거부자들은 행사 내내, <이스라엘 국방부>표시를 붙이고 “병역을 면제받으시겠습니까?”라고 쓴 팜플렛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서는 신체적 장애가 아닌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신념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힌 팜플렛이었다.


시민과 군인이 혼동되어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인이 되지 않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시민이 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때문에 신념만 가지고도 군대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병역거부권의 실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직도 힘들고 머나먼 이야기임을 절감해야 했다. 팔레스타인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에서 군대의 힘은 점점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나는 이제 팔레스타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가 끝난 후, 각국에서 모인 병역거부자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거나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에서 평화 활동을 하게 된다. 떠날 시간이 됐고, 병역거부자들은 일주일간의 즐거운 만남을 정리했다. 나를 비롯한 스페인, 터키, 칠레 병역거부자 8명은 16일(금) 예루살렘 근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배들레햄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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