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포스터
대학로에 한 포스터가 떠돌고 있다. 프랑스 유명한 작가, 아멜리 노통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포스터. 대학로 낙산씨어터에서 그녀의 베스트셀러작인 <적의 화장법>이 초연되고 있다.
연극 무대는 단촐하다. 공항의 2인용 대기석 의자 하나. 아내역과 경찰역 등 인물들이 조금씩 등장하곤 하지만, 연극은 2인극에 가깝다.
여기, 비행기 이륙이 연기되어 기다리고 있는 깔끔한 양복의 샐러리맨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이상한 사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연극은 시작한다.
사내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남자에게 자꾸만 말을 건넨다. '나는 양서류라고 하네, 이름이 마음에 안 드네, 어릴 적 살인을 해봤네, 한 여자를 평생 사랑했네.' 시종일관 떠들어대는 사내 때문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에게 사내는 말한다. '그 여자를 강간했네, 그리고 또 죽여버렸지.'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의 반전. 이 연극의 묘미는 이 반전들이다.
시종일관 연극은 이 두 사람의 말싸움이다. 아주 작은 줄다리기를 하듯이 팽팽하게 이리 끌렸다, 저리 끌리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서로를 자극하고 비웃는다. 연극의 선전문구처럼 1시간 남짓 무대는 '언어의 결투장'이 된다. 이것이 이 연극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단지 두 사람의 액션조차 거의 없이 입 밖으로 뱉어내는 대사들을 객석에서 가만히 앉아 듣고 있다보면 관객들은 조금은 지루해질 수 있다. 이 때쯤 마주하게 되는 연극의 반전은 아주 충격적이며 아주 깊은 속에 숨겨져 있다. 바로 인간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연극은 올 여름에 개봉한 영화 <쓰리,몬스터>와 닮은 면이 있다. 세 단편으로 이루어진 <쓰리,몬스터>는 인간 내면의 질투에 관한 이야기다. 가지고 싶은, 사랑 받고 싶은, 예뻐지고 싶은. 바로 보통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다. 이 질투가 영화 속 극한의 상황에 놓여졌을 때, 얼마나 끔찍해지는지. 영화는 관객들에게 내 안의 악마로 마주하게 하고 공포를 이끌어 내었다.
연극이 끝나가며, 주인공이 퇴장한 무대는 깜깜해지고, 왠지 마음 속이 아려오는 슬픈 음악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예쁘게 타이핑된 글자들이 스크린화면 위에 뜬다. 한 편의 짧은 소설 한 권을 끝내는 기분으로 막이 내린다.
연극의 열쇠는 바로 나 자신이다. 무엇보다 두려워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잔인함인 것을 연극을 말한다. 공연장 낙산씨어터는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 두 중견배우들의 주름살 사이로 가득했던 땀방울까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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