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마다않는 의사, 환자 애먹이는 병원

모 유명 대학병원에서 겪은 황당한 일을 고발합니다

등록 2004.11.15 16:40수정 2005.07.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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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유명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의 보호자로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글 한줄 올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해 할 명성을 지닌 대학병원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싶어서 그럽니다.


작년 말 장인께서 위암 수술을 하셨습니다. 담당 의사가 수술이 가능한 날을 기다리느라, 위암 확진 이후 2개월 가량 기다려야 했습니다.

수술 직후, 담당 의사가 "초기 단계라서 수술은 잘 끝났다"고 말해 저희 가족들은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에는 처방한 항암제 내복약을 복용하며 2개월에 한 번씩 경과 확인을 위해 담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성의 표시 봉투를 의사에게 건넸습니다

수술 후 첫 외래 진료 날, 처가 식구들의 강력한 권유로 담당 의사에게 건네줄 '봉투'를 만들었습니다. 대학 병원의 유명 교수에게 수술을 받으면 어느 정도 (돈으로) 인사를 해야 경과 진료도 잘봐 준다는 논리였습니다. 액수는 밝히지 않겠지만, 그날 돈 봉투를 받는 그 의사교수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이거, 의사 선생님이 너무 수고하셨는데, 보잘 것 없는 성의지만…."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처제는 돈 봉투를 내밀었고 담당 의사는 "아, 예…"라는 짤막한 대꾸와 무표정한 얼굴로 봉투를 책상 서랍에 집어 넣었습니다.


사절하려는 기색은 아예 없었고, 더욱 한심한 것은 고마워하는 기색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돈 봉투를 받아 챙기는 대한민국 의대 교수의 행태를 보면서 한동안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병원비 꼬박꼬박 내고 사례비까지 얹어준 것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걸 한국 사회의 인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아직 있으니까요. 환자가 돈을 냈으면 그에 상응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딱 세 문장으로 끝나는 진료

수술 환자 경과 진료라는 것도 참 기가 막히더군요. 진찰 시간은 딱 2~3분입니다. 충북 청주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해 3시간을 달려와 고작 2~3분 진찰 받는 것입니다. 특히 오후에 3~4시간 정도만 진찰하는 그 유명 교수 의사의 예약 환자는 80여명에 달했습니다.

진료실 앞 좁은 복도는 시장판처럼 북적거리고 기다려서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그럼 그 교수 의사는 환자 얼굴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몸무게가 얼마세요" "침대에 누워 보세요" "약 좀 더 드시구요, 다음 진료는 간호사한테 얘기를 들으세요" 딱 이 세 마디로 상황을 끝냅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내의를 가슴까지 끌어올려 수술 부위를 보여 준 아버님은 미처 바치춤도 챙길 새도 없이 진료실을 나와야 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환자가 알아서 챙겨라?

최근 수술 경과를 알기 위해 CT촬영을 하고 나서는 더욱 기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CT촬영을 위해 수십만원을 선납하고 2개월 후 예약을 했습니다.

2개월 후, 오전에 CT 촬영을 하고 오후 2시경에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오전에 찍은 CT 결과에 대해 말해줄 줄 알았는데 간호사 말이 "1주일 내에 집으로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오후에 CT 촬영을 하고 곧장 진료를 받았다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5시간이나 허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부아가 끓어 올랐습니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병원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초조함과 불안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아버님은 참지 못하고 그 병원에 다니는 아는 친척에게 경위를 알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시쳇말로 '뚜껑이 열리는 소리'였습니다. CT 결과는 병원에서 연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 쪽에서 직접 전화해서 알아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촬영한 지 열흘이 지난 상태에서 다시 시간까지 알려 주면서 담당 의사에게 다시 연락해 보라고 하더군요.

또 우리가 애초에 간호사의 안내를 잘못 들었다는 얘기까지 덧붙였습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더군요. 수십만원 하는 촬영비를 몇 개월 전에 선납 받고서 그 결과는 환자가 직접 전화를 해야 알려 준다니요.

한 시간 최대 진료 환자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감히 보건복지부에 건의합니다. 촬영비나 검사비를 전액 선납 받고 예약하는 제도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예약금(20% 이내) 정도는 이해하지만 수십만원을 몇 달 동안 선납받을 경우 발생하는 이자 소득을 병원에서 챙길 하등의 명분이 없습니다.

또 의사가 한 시간에 진료할 수 있는 최대 환자수를 제한해 주십시요. 2~3분 동안 진료를 받기 위해 멀리 지방에서 하루 일정을 모두 포기하면 의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한민국 의사가 '기술자'로 전락한 지금의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아참, 최근 외래 진료에서 생긴 일을 빠뜨렸네요. 1개월 전 예약 날짜에 찾아갔더니 엉뚱한 젊은 의사가 진찰실에 앉아 있더군요. 간호사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연구 휴직으로 미국에 나가서 6개월 뒤에 돌아온다더군요. "그럼, 왜 예약을 받았냐"고 했더니 "특진료 없이 다른 의사 선생님이 봐 주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정말 당당한 대한민국, 당당한 대학병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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