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31회

31회 - 테베 왕녀 아호텝

등록 2005.07.12 09:57수정 2005.07.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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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켜줄 테니, 내 뒤로 붙어요!”

갑작스런 남자와의 첫 입맞춤, 사제는 이성과의 접촉을 금지하는데 미리암은 별 저항도 없이 허락하고 만 것이었다. 땀과 적의 피가 범벅이 되어 모세의 등을 타고 흘렀다. 자기를 지켜주는 모세의 등을 보며 미리암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청동검을 휘두르며 한 마리 흑표범처럼 날뛰는 모세 앞으로 중무장한 장수가 나섰다. 모세는 장수의 무장을 보고 순간 움찔했다. 이집트에서는 더위 때문에 투구를 쓰는 사람이 없는데 그 장수는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모세는 딱 한번 투구를 쓴 용병을 본 적이 있었다. 멀리 북방에서 온 히타이트 용병이었는데, 간혹 멋으로나 투구를 쓰지, 싸움 중에는 투구를 쓰지 않았다.

역시 이집트의 더위 때문이었는데, 모세 앞으로 나선 장수는 이집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투구를 쓰고 있었다. 혹시 히타이트 용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패에 정교하게 그려진 상이집트의 상징 연꽃과 독수리 문양을 보면 테베 왕가의 사람이 분명했다.

쨍!

모세는 그 장수의 은빛 칼을 한번 내리쳐보고 깜짝 놀랐다. 칼의 빛깔은 분명 은빛인데 은제 칼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은은 살상 무기로 만들기에는 너무 무른 금속이라 장식품에 불과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테베왕 세케넨레도 은빛 칼을 가지고 있었다. 모세는 다시 청동검으로 적의 장수를 공격했다. 칼이 부딪치면 날이 나가는 것은 청동검이었다. 모세는 여태 청동보다 단단한 금속을 보지 못했는데 저 은빛 칼은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해서 무척 놀랐다.

‘테베군이 저걸로 무장한다면 힉소스가 당해낼 수 없겠는걸?’
그나마 다행이라면 테베도 저 은빛 칼을 대량 생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테베군은 아직도 석기 무기를 쓰고 있었으니까.


모세는 테베의 장수와 연실 칼날을 부딪치며 싸웠다. 적장의 은빛 칼이 단단하고 날카롭기는 했지만 무술 실력은 모세가 우위였고 힘도 있었다.
우와-!

남쪽 전장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모세와 테베의 장수를 비롯해서 모든 병사들이 동작을 멈추고 남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승리의 함성인데 어느 쪽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세트! 세트! 세트……!
힉소스군의 함성 소리였다. 그 함성 소리는 분명 적장을 죽였을 때 승리를 확신하고 지르는 소리였다.

“이 함성 소리가 들리겠지? 테베왕이 죽었다. 항복해라. 죽이지는 않겠다.”
적장의 은빛 칼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칼을 놓지는 않았다. 곧이어 말발굽 소리와 함께 제제르의 전차가 달려왔다. 제제르는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구의 시체를 아포피스 앞으로 내던졌다.

“아포피스님, 보십시오! 제가 왜 셉투라고 불리는지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세케넨레의 시신입니다!”

제제르의 도끼에 머리가 으깨져 엉망이 되어버린 시체였다. 피와 뇌수가 범벅이 되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화려한 복장으로 봐서 한눈에 테베왕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시금 모세는 투구를 쓴 테베의 장수에게 명령했다.

“그 칼을 버려라. 테베왕처럼 개죽음 당하고 싶은가?”
그 장수는 마지못해 은빛 칼을 땅바닥에 박아놓고 투구를 벗었다.
어?
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장수의 얼굴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장수는 여자였다. 아포피스가 앞으로 나서서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세케넨레의 시신을 가지런히 눕혀 놓고 여자에게 질문했다.

“혹시 테베 왕녀 아호텝?”
여자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포피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모세와 제제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반기를 들었다지만 미망인을 같이 처단할 수는 없습니다.”
제제르가 이집트의 관습을 들어 여자를 변호하자 모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포피스님, 저 여자는 테베의 왕위 지명권이 있는 여자입니다. 포로의 가치가 충분한데 왜 풀어준단 말입니까?”

이집트는 다른 지역처럼 맏이가 왕위를 계승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권을 가진 사람은 제1 왕녀였다. 파라오는 제1 왕녀와 결혼한 남자가 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래서 파라오의 아들은 왕위를 얻기 위해 제1 왕녀와 기꺼이 형식적인 근친혼을 하곤 했다.

세케넨레가 죽었으니 테베의 왕은 제1 왕녀 아호텝이 지명한 자가 될 것이었다. 세케넨레의 아들이 될 수도 있었고 그 형제가 될 수도 있었다. 마땅한 남자가 없다면 아호텝이 직접 테베왕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아호텝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호텝이 인질이 된다면 테베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거나, 테베의 왕족들이 자기들끼리 왕이 되기 위해 싸울 동안 어부지리를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포피스와 제제르는 귀중한 인질인 아호텝을 기꺼이 놓아줄 모양이었다. 여자를 존중하는 이집트 대대의 전통이 힉소스 귀족인 두 사람의 사고방식까지 지배한 것 같았다.

“우리는 함족이 아닙니다! 셈족이 함족의 전통을 존중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일주일에 두 번 하던 연재가 늦어지니 뵐 낯이 없습니다. 역사공부하랴, 성경공부하랴, 밥벌이도 하랴, 그래서 늦어지니 이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일이 생겨서 중국에 2주 가량 갔다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연재는 8월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소설의 주제에 접근하는 착상은, 기존 종교계의 해석이 틀렸으니 새롭게 다시 해보겠다는 게 아닙니다. 전작 '협자 예수'는 그런 의미가 강했으나 '깜둥이 모세'는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태인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탄압하는 것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위 시오니즘의 허구를 탐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간도는 팔레스타인 땅과 다르죠.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 실체의 문제니까요. 그렇다고 유태인처럼 무기를 들고 간도를 찾는다는 건 반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일주일에 두 번 하던 연재가 늦어지니 뵐 낯이 없습니다. 역사공부하랴, 성경공부하랴, 밥벌이도 하랴, 그래서 늦어지니 이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일이 생겨서 중국에 2주 가량 갔다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연재는 8월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소설의 주제에 접근하는 착상은, 기존 종교계의 해석이 틀렸으니 새롭게 다시 해보겠다는 게 아닙니다. 전작 '협자 예수'는 그런 의미가 강했으나 '깜둥이 모세'는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태인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탄압하는 것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위 시오니즘의 허구를 탐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간도는 팔레스타인 땅과 다르죠.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 실체의 문제니까요. 그렇다고 유태인처럼 무기를 들고 간도를 찾는다는 건 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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