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여론형성과정에서 타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에 전국적인 정치여론이 형성되고, 이 시점에 형성되는 여론이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일정 기간 정국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명절기간에 전국적으로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전국적 범위에서 여론 형성'이 이뤄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두가지 중층적 차원에서 정치여론이 교환되고 형성되는데, 이는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지역간 여론의 컨센서스와 젊은층과 노년층이라는 세대간 여론의 컨센서스가 이뤄져, 여론이 상호 청취되고 토론되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번 추석 민심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정치현상과 관련한 토론은 고사하고 의견교환마저도 타 명절에 비해 지극히 적어 정치여론이 하나로 결집되고 정리되어지지 못하는 특징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명절기간이 짧았다거나 귀성인구가 적었다는 물리적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이 현재 대두된 정치현안에 대한 관심도가 지극히 적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연정,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큰 시각차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현 정국의 화두인 '연정'에 대해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분석된다. 부가적 이슈인 국정원 도청수사나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면서까지 제안한 '연정'에 대해, 야당 대표는 그렇다치더라도 일반 국민들까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고 외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두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연정의 제안이 선거구제 개편과 맞물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해법이라는 주장에 대한 국민적 동의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국민적 동의가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민생고로 인한 정치적 관심 감소, 정치적 컬러가 다른 정당간의 연정에 대한 거부감, 연정파트너인 야당의 거부, 연정의 진정성에 대한 홍보의 부족 등이 주요한 이유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지역주의 해소'가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내걸고까지 해결하고 싶은 필생의 정치적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지역주의 해소'를 자신들이 선거를 통해 결정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송두리째 바꾸면서까지 해결할 당면의 가장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간에 근본적인 갭이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대통령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두번째는 정치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볼 때 '연정 제안' 이전에도 그런 측면이 존재하였지만 '연정 제안'은 특히나 그런 양상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이후 달라진 정치커뮤니케이션 접근법이 이런 상황을 초래하였다고 보여진다.
즉,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전 시기에는 정치적 이슈의 제기, 이슈의 확산, 공론화, 해법의 제시, 국민여론 형성 및 논의의 통합 등의 정치커뮤니케이션과정에 있어 각 정치행위자집단의 나름의 역할과 기능 및 영역이 존재했었다.
다시 말해 메이저 언론이나 여야 정당 또는 시민단체에서 이슈를 제기하면 언론보도과정과 각 정당의 논의과정에서 이슈가 확산되고, 이러한 이슈가 시민사회영역에서 공론화를 거치면서 각 정치집단의 해법이 제시되고, 이 해법에 대한 국민여론이 형성되면서 이슈가 정리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현재 연정 논의는 이슈를 제기한 것도 대통령이요, 이슈 확산 및 공론화를 시도한 것도 대통령이요, 해법을 제시한 것도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국민의 낮은 동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의 문제점'이 이슈로 제기되고 그 해법으로 선거법 개편이 논의되면서 그를 위한 방안으로 '연정'이 제안되는 수순이 아니라, 전후 인과관계에 대한 논의없이 '연정'만이 여론시장에 던져짐으로써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거칠 수 없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물론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은 언론개혁을 추구함으로써 메이저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이전 정권처럼 사전에 언론에 의해 이슈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밟을 수 없었다거나, 수직적 당청관계를 해소함으로써 여당에 의한 이슈 확산 및 공론화의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정치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국민적 이해와 동의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는 정치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치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는 국민경제회복을 위한 명확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야당의 '지금은 국민경제를 돌볼 때이지 그런 정치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란 메시지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서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정리해서 얘기하면, 시중의 '대통령이 말을 너무 많이 한다'거나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는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발전과 국가 장래를 위해 '지역주의 해소'가 긴요한 과제이고 또한 '연정'이 한국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계기라 할지라도, 그러한 이슈의 제기 및 전개과정에 있어 대통령 개인의 소명의식이나 진정성으로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려 하거나 납득시키려 한다면 오히려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정치의 질곡으로 작동해온 지역주의를 해소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거대 담론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화두의 제시 및 해결방안 마련과정에는 정치권 및 시민단체, 언론, 학계 등 협력 가능한 전체 개혁세력이 동참하여 전 국민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는 형식으로 계획되고 진행되어져야 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덧붙이는 글 | 윤경주 기자는 정치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e-Politics분야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정치커뮤니케이션회사인 (주)폴컴 I&C 대표이사와 정치포탈사이트 폴컴(www.POLCOM.co.kr)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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