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었다 줄었다? 어머니의 희한한 삼베 조각

낡은 삼베 조각에 깃든 어머니의 사랑

등록 2005.10.07 11:02수정 2005.10.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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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된장 담그시던 모습이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된장을 담그셨다.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콩을 파는 곳을 몇 군데 둘러보시고는, 그 중에서 제일 괜찮다 싶은 곳에서 콩을 사다가 삶아서 메주를 쑤고 그것으로 나중에 간장까지 담그셨다. 얼추 1976년쯤부터 1985년 정도까지 그렇게 하셨던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시장에서 메주를 사서 된장이며 간장을 마련하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낡은 삼베 조각 하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라색과 갈색이 묘하게 뒤섞인 빛바랜 삼베 조각. 어머니는 그것을 메주를 쑬 때 모양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한약을 짜낼 때 사용하시거나 백설기를 찔 때 사용하시곤 했었다. 색이 그렇게 된 건 아마도 온갖 음식들이 그곳을 거쳐 갔기 때문이리라.

어머니의 삼베 조각 : 청국장을 고이 싼 모양에서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삼베 조각 : 청국장을 고이 싼 모양에서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이호준
청국장을 잔뜩 머금은 삼베 조각 : 콩 하나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배어있는 것 같다. 흘러 넘치도록 담은 어머니의 사랑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청국장을 잔뜩 머금은 삼베 조각 : 콩 하나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배어있는 것 같다. 흘러 넘치도록 담은 어머니의 사랑이 선명하게 느껴진다.이호준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그 삼베 조각이 희한하게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메주를 쑬 만큼 커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약을 짜내기에 딱 좋을 만큼 줄어들기도 하니 정말 놀라웠다.

어린 마음에 그 삼베 조각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메주도 시장에서 사게 되고 떡을 먹을 일도 점점 줄어들면서 삼베 조각을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뒤에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고 독립하게 되면서 그 삼베 조각에 대해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 뒤에 정말 우연히 그 삼베 조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청국장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때 청국장을 그 삼베 조각으로 싸주신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말이 절로 나왔다.


빛 바랜 삼베 조각 : 아무리 거칠고 낡았어도 이 삼베 조각은 언제나 어머니 냄새가 난다.
빛 바랜 삼베 조각 : 아무리 거칠고 낡았어도 이 삼베 조각은 언제나 어머니 냄새가 난다.이호준
사랑을 머금은 청국장 : 소중한 사연을 담은 삼베 조각에다 사랑을 가득 담은 청국장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삼베 조각에 깃든 사연처럼 어머니를 포근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사랑을 머금은 청국장 : 소중한 사연을 담은 삼베 조각에다 사랑을 가득 담은 청국장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삼베 조각에 깃든 사연처럼 어머니를 포근하게 지켜드리고 싶다.이호준
"아, 이 삼베 조각,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메주 쑤실 때 쓰던 그거죠!"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답하셨다.
"그래 맞다. 이 삼베로 메주도 쑤고 한약도 다리고 그랬었지."


나는 신기해서 재차 여쭤보았다.
"그런데 이거 정말 오래 쓰시네요? 이렇게 오래 써도 끄떡 없나보죠?"

어머니는 잠깐 생각에 잠기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실 이 삼베는 내가 시집올 때 너희 외할머니가 한 두루마리를 챙겨주신 거다. 필요할 때 적당한 크기만큼 잘라서 쓰면 되니 그게 낫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래서 아껴 뒀다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잘라서 쓴 거란다."

우리 집으로 이사온 조각 하나 : 어머니의 소중한 기억을 나에게 물려준 귀한 친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우리 집으로 이사온 조각 하나 : 어머니의 소중한 기억을 나에게 물려준 귀한 친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이호준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련해졌다. 외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가는 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그 삼베 두루마리를 조금씩 잘라 쓰면서 외할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을까.

그 사연을 들으며 그때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삼베 조각은 사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받은 두루마리에서 조금씩 잘라다 쓴 거였다. 모양이 같으니 나는 항상 같은 삼베 조각인 줄 알았고 크기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가 일흔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고이 간직해 오신 그 사연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나는 정말 감사한다.

손자와 함께한 어머니 : 자식을 품어주던 그 손길로 이제는 손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자식들에게 퍼주신 사랑만큼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손자와 함께한 어머니 : 자식을 품어주던 그 손길로 이제는 손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자식들에게 퍼주신 사랑만큼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길 소망한다.이호준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삼베 조각들을 하나씩 자식들에게 딸려 보내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그 삼베 조각을 통해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받은 삼베 조각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내 아이가 컸을 때 나도 어머니처럼 그 삼베 조각을 아이에게 보물처럼 건네주면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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