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마지막날을 맞은 김종빈 검찰총장이 17일 낮 서초동 한 중식당에서 일선 검사들과 오찬하기에 앞서 퇴임 인사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소 여부는 검사가, 유무죄는 판사가 가리면 그만
일반적 지휘가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직접 지시라서 처음 당하는 검찰총장이나 검사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률에 근거한 수사지휘서가 신문 지상에 사진으로 보도된 투명한 절차는 서로 얼마나 당당한가. 혹시라도 검사들이 지난 날 법무부의 전화 한 통화로 진행 중이던 수사에서 손을 멈추던 시절의 굴욕감에 대한 보복을 지금에 와서 하려는 건 아닌지 되새겨 보자.
어쨌든 이번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는 적법하고 정당한 권한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청법 제8조를 둘러싼 극단적인 해석의 차이는 지난번 대통령 탄핵 논란과 흡사하여 씁쓸하다. 양극단의 두 결론 중 하나를 선택하여 법 해석 논리를 꿰맞추는 견강부회의 거대한 청백전이 이 사회를 짓누르는 듯하다.
물론 검찰청법 제8조의 개폐도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 사건에서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만 지휘 감독할 수 있다는 규정을, 사실상 검찰에 대해 지휘 감독해선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강변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천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를 받아 그 취지를 검사들에게 전하고 따랐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강 교수 사건 자체의 성격이나 불구속수사 지휘 자체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며, 특히 검찰의 독립성을 해하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버렸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스스로 또는 떠밀려서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함으로써 파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 검찰총장이 장관의 지휘 내용을 수사 검사들에게 전하면, 수사 검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또 그 다음의 문제다.
공무원은 법률에 의해 위법하지 않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을 강하게 표시하거나 다른 방식을 제시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이견의 표출과 항명의 한계는 엄격히 구분돼야 마땅하다.
스스로 공안사건 주인공 된 검사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검찰총장이 대표한 검찰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장관의 지휘를 수용한다면서 사상 초유의 반발을 시도했다. 대검 공보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의 전문을 보면, 법무부장관에 대한 항명이자 선전포고나 다름없지 않는가.
이런 행태야말로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공안위협 행위라 할 수 있다. 사소한 공안사건 하나를 계기로 스스로 진정 공안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있음을 검사들이 모르고 있다.
검찰총장의 사퇴는 한편으로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니었을 뿐더러 적절하지도 못했다. 아울러 대검 차장 이하 검찰 간부들의 이중적 태도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검찰 간부들로서는 기실 꽃놀이패놓듯 하는 심경이 있었을 터이다. 비검찰 출신 장관과 그 위의 임명권자에까지 맞서 싸움을 시켜두고, 이기면 검찰 모두의 이익이고 지면 총장 하나 밀어내는 셈 치면 되는 것이었다. '법 준수' 운운하며 거센 항명을 하고, 검찰의 동요 방지를 구실로 사표는 내지 않겠다며 검찰총장 등만 슬쩍 떠민 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들 중 다음 검찰총장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장관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겠다는 뜻일까. 논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줄줄이 대항하고 차례로 사표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또 비검찰 출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 어떻게 할까. 검찰 간부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고, 비검찰 출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이제 다음 순서는 법무부장관의 퇴진을 묻는 일일 테고, 마땅히 한나라당이 그 일에 나설 태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제1야당은 그 형식에 맞게 사리를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대처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 대선까지 줄곧 정치 공세만 퍼부어서는 결과에 도움이 될 것이 크게 없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