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희 의원 사건 통해 본 '3·8 여성의 날'

"숨는다고 해결될 문제 아냐...책임지고 사퇴해야"

등록 2006.03.08 20:03수정 2006.03.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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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오늘은 여성의 날입니다. 억압받던 여성의 평등권과 자유를 사람의 이름으로 당당히 선언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인 1908년 3월 8일. 인간 이하의 처우로 삶의 밑바닥에서 고통 받던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의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절규하며 세계의 중심 뉴욕의 한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녀들의 외침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인간 이하의 차별적 삶에서 해방되어 남성들의 시혜가 아닌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한, 참으로 가슴 찡한 감동의 선포였습니다. 그 역사적 날을 기념하여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의 제안으로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70~1980년대 군사독재의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젊고 양심적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진보적 여성운동의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가부장적 독재권력에 억눌려 신음하던 여성 노동자, 여성농민, 여성빈민 등이 여성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여성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저 역시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이 운동의 한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1985년 진보적 여성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3월 8일을 한국 여성의 날로 정하고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지금까지 왜곡된 여성상을 바로 잡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 후 해를 거듭할수록 여성의 날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진단하고 여성권익을 위한 중요 과제를 선정하여 여성들의 실천적 의지를 담아내는 희망과 다짐의 축제가 되어왔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의 결집된 힘으로 양성평등실현을 위해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개정, 89년 가족법 개정, 93년 성폭력특별법제정 등 여성의 제도적 평등실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한국의 여성평등을 가장 크게 위협하던 호주제 폐지는 한국 여성운동사의 큰 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법률적 제도의 개선이 외형적인 틀에서 양성평등의 실현을 신장시켰다고는 하지만 아직 질적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적 규범, 생활의식, 사회적 통념과 관념에 내재된 여성차별의 뿌리는 여전히 깊고도 완고합니다. 특히 성폭력과 성추행으로 대변되는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은 이제 여성의 생존권을 유린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 교도소, 학교, 군대, 종교계 심지어 보육원 또는 그리고 장애인 시설까지 성폭력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추행과 성폭행의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도착적 성문화를 방조하다시피 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집단이, 소위 말하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데 있습니다. 결국 바른 문화를 선도해야할 최우선의 지도층인 국회에까지 파고들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은 여성의 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상품화된 여성의 성은 인격을 가진 객체로서의 여성이 아닌 사고팔며 소유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구조화시키게 됩니다.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는 최연희 의원의 발언은 이러한 성 상품화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가장 적확한 표현입니다. 즉, 술집 여성의 성은 사고 팔 수 있으며 추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그러진 의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적 범죄를 부추기는 행위입니다.

국회의원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는 자리입니다. 도덕과 윤리를 준수해야 할 공익적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문제는 숨는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딸들과 모든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후 도덕적 책임을 지는 자세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3월 8일, 저는 지금까지 여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헌신해 오신 많은 분들 앞에 숙연해 집니다. 그 분들의 서러움과 그 분들의 터져 오르는 아픔이 이 땅의 현실과 교차되어 감히 하늘을 올려다 볼 용기를 잃게 합니다. 또한 아직도 여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땅에서 차별받고 억압받으며 신음하는 이루 셀 수도 없는 여성들의 아픔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거짓말처럼 찾아옵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는 평등한 사회가 오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이 사라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답고 희망찬 세상이 오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믿음을 위해 함께 해야 합니다. 저 역시 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타 매체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타 매체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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